내게는 할머니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가장 아껴주셨기에, 내게 가장 잘 따르던 가족 구성원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할머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다른 친척들 집으로 가서 몇 년을 보낸 후 내게 “너밖에 없다”며 우리집으로 되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애물단지가 되어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늙어서 일도 잘 못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다른 친척들과 가족들처럼 짜증의 눈초리로 대하게 되었다. 지난날 할머니는 아버지의 회초리로부터 어린 나를 지켜주었지만, 몸이 다 자란 나는 세상으로부터 할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살아온 세월 동안 스스로를 지켜온 방법 그대로, 예수를 욕하고, 정치인을 욕하고, 자식들을 욕하고, TV 드라마 속 악역을 맡은 아줌마들을 욕했다. 그리고 며느리의 섬김에 불평으로 돌려주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넘어졌다. 2006년 봄 어느 날, 집에 나와 할머니 둘뿐이었다. 한적할 수 있던 집에서 할머니가 도움을 청했다. 근래에 자주 넘어지고 주저앉기에, 그래서 병원 치료도 받았고 이제는 호전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동안 주저앉았을 때보다 훨씬 약하게 넘어졌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할머니의 요청대로 두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할머니는 끌려오다가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또 넘어졌다. 어이쿠, 나는 할머니를 일으켜 짐짝 끌 듯이 다시 방으로 들였다.
그런데 이 날로부터 할머니는 끙끙거리며 통증을 호소하더니, 결국 입실을 했다. 나는 기도를 하라는 가족의 부탁에, 내 흐릿한 기억으로는 한 차례 새벽 기도에 나갔었다. 안타깝게도 열성을 내어 기도하진 않았다. 사실, 나는 열심을 내려고 했지만, 내게는 사랑이 부족했고 당시 모든 기도가 다 건성으로 나왔었다.
할머니가 입실을 하고 있을 때 병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몸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데, 누운 채로 나를 보더니 간절한 표정으로 연신 당신의 무릎을 두드리셨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일어날 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할머니는 운명하셨다. 나는 담담하게 한쪽 눈에는 백내장이 낀 할머니의 공허한 눈을 바라보았다. 속으로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어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이 이르기를 원하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기도는 어떻게 된 겁니까. 하지만 이 기도는 무력할 뿐이었다.
2009년 오늘에 와서야 할머니의 생의 마지막 기간에 내가 할머니를 대한 태도에 대하여 후회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특히 할머니가 넘어졌을 때 팔을 잡고 끌어당긴 것이 병세를 악화시킨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2006년 당시에 나는 어른들에게 이 말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나를 더욱 침묵하게 만들었던 건, 내가 무성의하게 할머니를 방으로 옮겼음에도, 그날 할머니는 다른 가족들에게 나 때문에 살았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말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를 울게 만든다. 요 며칠간 내 마음에 부담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눈물과 이 글을 섞게 하시려고 내게 짐을 지우셨나 보다.
이제야…… 짐을 내려놓고 평안을 맛본다. 그때 당연히 가졌어야 할 짐을 회피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3년이 지나서야 감당하고,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2006년으로 돌아가 본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몇몇 분들이 마비가 오기 전 할머니의 말을 전해주었다. 할머니는 비로소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했고, 사람들을 용서했으며, 마비가 온 후에도 고개를 끄덕여 예수를 믿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평안히 가셨다. 나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홀로 버스에 올라 차창에 맺혀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았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당시 나는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6:1)는 고백을 무수히 하고 다녔다. 내가 실수하고, 침묵한다 할지라도 주께서는 일하고 계셨다. 내 미약한 기도에 놀랍게 응답하셨다. 나는 시편에 왜 그토록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0:5, 106:1, 107:1, 136:1, 118:1, 118:29, cf) 스 3:11, 대상 16:34, 대하 7:3, 렘 33:10)는 고백이 반복되는지 그제야 알았다. 곱씹을수록 감사의 깊이와 지경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과 손길을 신뢰하게 된다(시 136편).
하지만 이 땅에 남은 나에게는 짐도 함께 남았다. 할머니가 평안히 가시기 위해 내게 넘겨준 짐이었다. 그 죄책감과 죄송함을 3년간 가슴에 묻어오다가, 오늘에야 종이에다가 잉크와 눈물을 풀어놓는다. 내게 평안이 깃들고, 나는 다시 한 번 빗방울 맺힌 간부연구실의 유리창을 바라보며 고백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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