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요한17 2009.12.06. <예수의 이름으로> 옛날 이야기입니다. 2,000년 전에 미문이라는 곳을 통하여 두 사도가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에서 구걸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구걸하던 그는 불행히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였습니다. 사도들이 돈을 구하는 그와 눈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그랬더니 평생 걸어본 적도 없던 그가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일어나기 불가능할 정도로 주저앉아 계십니까? 나를 짓누르는 문제들, 은밀한 범죄들, 믿지 않는 가족의 문제가 우리를 억누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앉은뱅이였던 자의 고백을 함께 드리기 원합니다.. 2024. 9. 25. 2009.12.02. 효시의 십자가 십자가는…… 효시다. 본디 효시란 말은 참수한 머리를 저자나 성문에 본보기로 내걸 때 쓴 말이다. 로마의 십자가는 참수당한 머리보다 본보기의 목적을 훨씬 톡톡히 해냈다. 고통스럽고 끔찍하게 죽어가는 죄수의 모습을 장시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는 입장은 세상과 우리가 다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는 바대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라. 사단이 의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이 본보기를 보이시는가 깨달으라.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가슴에 새기라. 묵상하고, 고백해보라.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울부짖음과 신음, 피 흘림과 살 떨림에 답하라. 절대, 절대 욥의 친구들처럼 하지 말라. 십자가 아래 여인들과 요.. 2024. 9. 14. 2009.05.16. 나만의 이유 바울이 왜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했는지, 세례 요한만의 기쁨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안다. 2023. 12. 10. 2009.05.08. 사도 요한과 나 2 나는 며칠 전에 이런 질문을 나 스스로와 회중에게 던지고 싶었다. 기도와 청강과 개인 지도와 독서와 성경 공부 등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과 지경을 보고, 이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가는 곳마다 가르치는 자와, 지식은 없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만 알아 삶에서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자 둘 중 누가 되고 싶냐고. 요한 사도는 알려진 모든 인물 중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와 비전에 관하여 강력하게 선포하는 대신, 잠잠하게 지내며 형제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할 뿐이었다. 그의 작아 보이는 사랑으로, 역설적으로 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껏 넓어진 지경을 내 지식으로 삼아 선전하며 살아왔다. 2023. 11. 21.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