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0.08.13.(목)
정리: 2020.08.13.(목)
사무엘상 6:16-7:2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주어를 바꾸어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일깨우실 때, 내가 그분과의 관계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무엇일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망해서 하나님의 일이 전파되는 게 아니라, 살아서 생존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고 오늘 본문을 다시 생각하니, 벧세메스 사람들처럼 내가 하나님을 어찌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처럼 나를 하나님 앞에 단장하고 그분이 주도적으로 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란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추구에 성령께서 깨우쳐주신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바라보며 따라는 것. 그것이 오랜 기다림이라 할지라도. 그 빛 앞에서 그 빛을 사모하는 것. 온 족속으로 그 빛을 사모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하여 그 앞에 선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다시 생각한다. 다시 믿는다. 그 피가 정결치 못하게 할 죄와 수치는 없다. 나는 다시 주께서 몸으로 여신 휘장 사이로 들어가 감격과 떳떳함으로 그 앞에 서리라. 이로써 내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주께서 택한 백성이요, 주의 집으로 살리니, 벧엘이 이곳이요 내가 벧엘이다. 대학 때 부르던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로서 찬양하며 예배하며 살리라.
하나님, 나를 받으시고 나를 주관하소서. 주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거룩하게 숭고하게 희생하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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