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11.11.(월)
정리: 2021.04.01.(목)
스가랴 9:9-17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오지 않은 날을 살기
아직 희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주는 희년을 살라 한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을 부르신다. 소망은 기뻐할 때 살아있음을 나타낸다, 증명한다, 보인다. ‘기쁠 때’가 아니라 ‘기뻐할 때’이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것이 바로 이 ‘소망’과 ‘기쁨’이다. 나는 갇히기만 했고 갇힌 환경에 잠식되어 절망하고 기쁨을 잃었다. 심지어 요 며칠은 스트레스 인내도가 극도로 낮아졌다.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폭발하여 소리를 지른다. 압박감에 공격적이 되는 것. 강박 증세. 이건 아빠의 증세 아닌가. 아,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닮아가고 있구나.
주는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에게 요새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갑절로 회복하신다고 공고하신다. 성경의 다른 곳에선 주님이 산성이고 요새라 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성경 구절들을 기억은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구절들을 모르겠다. 내 영혼이, 내 삶이 잊었다. 다시 배워야 한다. 내 이명을 뚫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셔야 한다. 가르쳐주셔야 한다. 바로 아래 인쇄된 기도 제목이 내 기도 제목이다. “주님, 저의 삶에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 안에서 형통함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말한다. 내가 주님을 인한 기쁨과 소망이 없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주는 선한 하나님이라고. 내가 의지할 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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