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0.06.26.-28.(금-일)
정리: 2020.06.26.-28.(금-일)
창세기 7:10-24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죽음과 어둠 속의 생명
방주는 방형, 즉 네모난 배란 뜻이다. 여기에는 노도 없고 엔진도 없다. 돛도 없었을 것이다. 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내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배 속에 나는 갇힌다.
김서택 목사님은 방주에 탄 처지가 광야를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처지와 비슷했다고 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는 여정. 예측 불가능한 미래.
하지만 그 배는 폭우와 홍수로부터 구원 받은 배였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나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지은 배와 그 여정. 그리고 광야의 이스라엘.
나는 김서택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요게벳과 모세가 떠올랐다. 갈대상자를 엮어 역청을 칠하고 모세를 넣어 띄운 함. 방주처럼 밖을 볼 수도 없었지만,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갈지 알지 못했지만, 그 함은 방주처럼,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이 이끄시고 원하신 곳에 다다랐다.
김서택 목사님은 이렇게 썼다.
“배 안에 쌀은 점점 떨어져가고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 배를 운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배는 하나님이 운전하시기 때문에 엔진이 필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운전사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밖을 내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밖을 내다봐야 보이는 것이라고는 떠다니는 시체들뿐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이 배 안에 다 있습니다.”(김서택, 『대홍수, 그리고 무지개 언약: 창세기 강해 설교 2』, 홍성사, 1998, 170-171쪽.)
그렇다면, 지금 나를 파묻은 흑암조차도 하나님의 인도로 봐야 하는 걸까. 나는 구원의 방주에 탑승한 걸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때로는 벅차고 승리의 순간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 사흘을 죽음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의 음성도 들을 수 없이 막막하고 먹먹하게 그와 함께 죽어있어야 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도 같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걸까. 방주 속 생명들처럼, 갈대 상자 속 모세처럼,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진중 언약궤처럼.
내 의지를 발할 수 없이 추풍낙엽처럼 어지러이 빙빙 돌며 흩날리는데, 이 추풍을 성령의 바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방주를 움직여 결국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한 물결을, 갈대 상자를 결국 애굽 공주에게 다다르게 한 흐름을.
나를 해칠 것 같은 파도와 바람을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세세한 인도로 믿어야 하는 걸까. 방주 속 양식이 떨어져가지만 불안이 나를 지배해서는 안 되듯이. 그가 나를 먹이시고 푸른 초장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도록,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방주와 갈대 상자 속 어둠에 짓눌려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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