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0.12.10.(목)
정리: 2020.12.11.(금)
히브리서 9:1-10
첫 번째 언약에도 예배 규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한 장막을 지었는데, 곧 첫째 칸에 해당하는 장막입니다. 그 안에는 촛대와 상이 있고, 빵을 차려 놓았으니, 이 곳을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장막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제단과 온통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와 언약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 위에는 영광에 빛나는 그룹들이 있어서, 속죄판을 그 날개로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이것들이 이렇게 마련되어 있어서 첫째 칸 장막에는 제사장들이 언제나 들어가서 제사의식을 집행합니다. 그러나 둘째 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또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것은 첫째 칸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아직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런 것은 다만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예식과 관련된 것이고, 개혁의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입니다. (새번역)
나의 묵상: 주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서
이 육신 장막 벗을 날이 올까. 점점 이전 같지 않게 쇠락해가는 몸으로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이 땅에서 이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희생으로 귀중한 기회가 열렸는데,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정상일까.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지만, 몸을 포함한 전인이 영원한 하나님과 쭉 함께하고픈 마음이 든다. 하나님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몸이 힘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 이 곳이 좋사오니.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을 변화산에서 내려 보냈듯, 나는 여기에 있다. 한 가지 감사할 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이 땅의 삶이 힘겹지만, 그럼에도 예수께서 함께하신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어렴풋이 내다보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걸 예수님의 제자들은 경함하고, 그분을 만났다.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지금은 경험하지 못하고 내다보는 것을,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완성의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이, 이 현실이 매우 아쉽다. 속히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좋겠고, 속히 주께서 다시 오시면 좋겠다.
음, 그러기 위해서, 또는 그 분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할 게 무엇인지는 며칠 전에도 기록하지 않았는가. 예배, 를 위한 교회와 선교, 그리고 선교하는 교회. 이를 위해 다시 하나님께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힘을 구할 수밖에.
주님, 당신의 영원한 생명력을 끊임없이 공급해주소서. 말씀과 기도로, 점차 불어나는 강물과 몰아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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