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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묵상록

2008.11.25. 어느 주교의 싸움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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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로 온 첫 날, 취침 시간에 방송이 나왔다.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흘러나온 방송 첫 마디에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창과 칼을 낫과 쟁기로!” 순간 이사야와 요한계시록의 언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사 2:4) 이 구절은 입대 전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내 안의 창칼을 쳐서 삽과 보습을 만들라고. 이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가꿀 도구라고.

방송은 이어졌다. “……라는 구호처럼 인류는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하지만” 다음부터는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에 관한 슬픈 현실이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졌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던 날은 없었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전쟁도 계속될 것이라는.

하지만, 그래 ‘하지만’ 나는 알고 있고 믿고 있다. 창칼을 쳐서 삽과 쟁기와 보습을 만드는 것이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그 날에, 그 때(kairos)에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선언임을.

군대는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는 승리를 위해 싸운다. 영적인 싸움은 늘 비상이다. 내가 내 칼을 들고 싸우면 진다. 내 혈기나 열정으로 이길 수 있는 대적은 없다. 나는 열심히 농기구를 만들어, 성령의 열매 맺도록 나무를 가꿔 하나님의 동산에 보탬이 되면 된다. 다만 민감하게 깨어 있어 파수 역할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나를 다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득이 된다. 나는 거룩한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나무를 잘 가꾸면 지치고 상한 새들이 와서 쉴 것이다. 그리고 새들은 열매를 취하고 그리스도의 생명력 가득한 씨를 그들이 소화한 만큼 가는 곳마다 퍼트릴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확장된다. 그러기 위하여 나부터 살아남고 변화 받아야 한다. ‘어느 주교의 비문’처럼 말이다.

그럼 적군이 올 때 나는 농기구를 들고 나가느냐…… 그렇지 않다. 내 칼은 없기에 나는 성령의 검을 들고 나선다. 이미 내 영과 혼, 관절과 골수를 수없이 찔러 쪼갰기에 이 검이 얼마나 예리한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승리의 확신을 갖고 이기기 위해 싸운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농사와 검술 연마다.

 

어느 주교의 비문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가장 먼저 변화시켰어야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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