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이 형과의 일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부대로 보내셔서 가르치는 것을 적는다. 사실 오래 전부터 작성했어야 했다)
전에 해안 소초 전투병과 출신의 2소대장님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생필품이 떨어지고, 피복류가 해질 때, 때맞춰 들어오는 보급품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풍요롭게 지내는 자는 불편을 모른다. 없는 자의 설움과 주림과 아픔도 모른다. 나는 최근 하나님의 인도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과 같은 책의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당장 생존의 문제에 있는 없는 자들은, 입고 먹고 씻고 자게 해주는 손길과 물자와 사랑을 무시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있는 자 역시도 지속적인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탄약, 식량, 전투복, 전투화, 속옷, 수건, 치약, 비누, 칫솔, 차량의 연료, 난방 기름, 방탄모, 전투 조끼, 식수대, 조리대, 배식대, 냉장고, 야전선, 통신 장비, 배터리, 전기 시설, 방독면, 화생방 보호의 세트, 양말, 방탄모 턱끈 고리의 니벳, 수통 마개 뭉치, 취사용 버너 펠리 ¼ 마력용, 삽, 전투화 끈, 선풍기, 낫, 톱, 소총 장전 손잡이, 소총 가스 조절기, 장갑, 시멘트, 망치, 삽자루, 망치 손잡이, 수저, 기타 제복, 정복, 정비복, 항공복, 계급장, 의장복, 소각틀…… 없이 맨몸뚱이로 군인이 뭐라도 할 수 있을까? 아니, 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 구실이나 생존할 수나 있을지?
내가 있는 부대는 다른 부대가 자신들의 임무에만 전념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대다. 피지원 부대는 물품과 자원을 원래 있던 것처럼 여기지만, 그 뒤에는 이름도 빛도 없이 드러나지 않는 섬김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도 받지 못하고 일한다. 물건 빨리 내놓으라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102보충대부터 거쳐온 장병이라면,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나 세대가 감사를 잊었다. 우리를 잊고, 지구의 환경과 자원을 원래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한국 전쟁을 치른 국군과 UN군을 잊고, 독일에서 죽을 고생과 서러움을 겪은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잊고, GP에서 떨고 있는 장병들을 잊고, 무시하며, 되려 욕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놀아나는 모습도 빈번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쌓아온 것들을 갉아먹고 무참하게 소비하며, 지원을 받아 성장했으면 나눌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한다.
우리는 또한 농부, 어부, 낙농업자, 유리 기술자, 철공소 직원, 건설 근로자, 환경 미화원, 애프터 서비스 직원, 집배원, 택배 기사, 식당 종업원, 피자 배달원……을 잊는다. 원래 있는 당연한 것처럼. TV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이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있는 자인 것 같은 연예인들이 원래 있던 당연한 것들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노동의 땀을 흘려 일당을 받고, 그 일당을 더 없는 자들을 위해 나누는 데에서 은혜와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있는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호흡하는 숨과 목숨마저 원래 우리 것이 아니고, 진화론적으로 자연히 어쩌다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유기적인 연합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우리는 감사하며 받은 선물을 없는 자와 출생이 기구하거나 저주스러운 삶을 살거나 생존하기 열악한 자에게 나누어야 한다.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지원 부대가, 지구가, 선배 전우들의 수고가, UN군의 피가, 전후 미국의 지원이, 파독 근로자들의 땀이, 국군 장병들이, 주한 미군이, 외국인 근로자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스스로 지킬 수도 없으면서, 유기적으로 사는 법과 더불어 사는 법도 모르면서. 반대로 말하자면,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살아가면서. 나아가, 값없이 주어진, 아니 스스로 값을 치른 퍼주기식, 제 살 깎아 먹기식이라 비방당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나 싶다. 일반 은총을 원래 있던 당연한 것으로 알기에.
은혜와 섬김을 욕과 무시로 갚는 적반하장의 비극. 발을 씻기시는 예수의 얼굴에 발길질을 하는 무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창으로 찌르는 무모함.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섬기러 오신 주께서 오히려 비방당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셔서. 오늘날 나도 당신의 고난에 아주 조금이나마 동참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있게 된 자의 무시를 받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공기와 물처럼 소중함을 몰랐던 것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하시고,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섬김을 받았고, 받고 있음을 알게 하셔서 감사하고, 주님을 조금이나마 본받는 자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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