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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고린도전서 2:1-16 | 영적인 지혜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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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들과 진리에 대해 토론하는 교수

작성: 2024.09.13.(금)
정리; 2024.09.15.(일)


고린도전서 2:1-16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영적인 지혜

고린도전서 2장에서 다루는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영적인 지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시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나를 위한 희생이라는 걸 심장 깊이 알려면 머리로서만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인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 있다. 잠언에도 감추어졌던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분이기에, 책으로 읽어서만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야 알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이 강림한다. 사람들이 통곡하며 회개하고 예수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각지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로마 제국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 2‧3세들이 모여 있었는데, 자신들이 태어난 곳의 말로 하나님 나라의 큰 비밀을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이태원에 모여 기도하더니 누구는 유창한 스와힐리어로, 다른 사람은 베트남어로, 독일어로, 캄보디아어로, 러시아어로, 영어로, 포르투갈어로, 광둥어로, 프랑스어로, 아랍어로, 스페인어로, 페르시아어로, 힌디어로, 일본어로, 벵골어로, 만다린어로 말하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외국인들의 주목을 끈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케 되어 흩어졌던 인류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이날 출석 교회의 금요 예배에 갔는데, 설교하던 담임 목사님이 몇 시간 전 내가 쓴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케 되어 흩어졌던 인류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는 똑같은 내용을 말해서 놀랐다).

그런데 이 ‘현상’에 어떤 이들은 술에 취한 거라고 비웃었다. 확실히 바울이 쓴 대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화려한 글솜씨의 바울은 말에는 부족했던 듯하다. 그는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사람 앞에 나서길 두려워했고, 다른 성경에서는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고후 11:6)라고 썼다. 하지만 그래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했다(고전 2:4).

예수를 믿는 건 논리로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믿음이 어리석어 보이거나 복음을 알 수도 없다. 설령 긍정적으로 복음을 보거나 고개는 끄덕일 수 있어도, 전인격적으로 수긍하고 따를 수는 없다. 나아가, 믿음을 가져도 내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성령을 받은 것이니, 자신에게는 자랑할 게 없다. 바울이 1장에서 이미 말했듯이,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다고 이성과 논리를 전도에 활용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분명하고도 객관적인 증거와 짜임새 있고 빈틈없는 논리가 필요하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교수 C. S. 루이스는 그의 작가적 역량과 언어 논증을 활용하여 대중을 위한 기독교 변증서인 『순전한 기독교』 등의 책을 남겼다.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2차 대전 후 방황하던 젊은 지성들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지적인 토론과 대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라브리 공동체를 열었다. 런던대학교에서 이슬람법과 동양법을 가르친 법률학 교수 노먼 앤더슨은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여러 부정과 반박 주장들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재반박하는 『부활의 증거』를 썼다. 무신론자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리 스트로벨 기자는 기독교와 예수의 허구성을 밝혀내려다가 도리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 앞에 바울처럼 회심하고, 예수는 신화가 아니라 『예수는 역사다』라고 발표했다. 팀 켈러 목사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뉴요커들에게 유일한 하나님을 믿을 필요성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말하다』 등을 썼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eason for God으로, ‘하나님을 위한 이성’이란 뜻이다. 낸시 피어시는 열광주의적인 믿음과 기도나 찬양이 아니라, 지적이고 이성적으로 먼저 예수님을 만났다. 그녀는 “프란시스 쉐퍼 이래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문화를 분석한 최고의 책”이라는 『완전한 진리』를 펴냈다. 이들의 노력과 대화, 강연, 저서들은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믿는 게 아니라 신앙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많은 열매들을 맺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란 감성의 영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지(知)‧정(情)‧의(意)의 전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지적이고 감성적이며 의지적인 모든 노력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도우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린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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