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9.19.(목)
정리: 2024.09.19.(목)
고린도전서 3:1-15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바울이 보는 신앙 성숙의 기준
1장에서 바울은 당 짓고 분열 짓는 이들도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불렀다. 이번 3장에서는 성도는 성도이되 초신자나 미숙한 사람으로 대하며, 심지어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부른다. 이러면 1장에서의 표현인 성도와 3장에서의 표현인 육신에 속한 자가 모순되게 충돌한다. 육신에 속한 자라는 표현은 성도가 아니라는 말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요즘 말로 크리스천이자 넌크리스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한 대상에 대하여 충돌하는 두 표현을 썼을까?
해석의 열쇠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사데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교회는 교회로되 죽은 교회. 겉으로는 활발하지만 회개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교회였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부르는 건 이들의 행위가 영적이지 않고 육신적이어서다. 다시 말해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도를 하고 안 하고, 죄를 짓고 안 짓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린도교회는 1장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엡 4:3)지 않고 파당을 지어 누가 크냐 다퉜다. 바울은 이를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끔찍한 죄로 보았지만, 고린도교회는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그래서 바울이 초신자나 미숙자, 심지어 육신에 속한 자로 대하는 건 고린도 성도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일부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훌륭한 믿음 위에 서서 남들을 가르칠 선생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각 파벌에선 각자의 전통을 고수하며 신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뒤에 나오겠지만, 고린도교회에는 방언, 방언 통역, 예언, 질병 치유 등 온갖 능력과 기적도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1장에서 보았듯, 비그리스도인들을 납득시키는 언변과 지식으로 지성 사회 복음화의 열매도 맺고 있었다. 학문과 영적인 능력과 업적을 두루 갖췄는데, 바울은 이들이 영적이지 않고 육신적이며 미숙하다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신앙의 성숙도를 보는 기준이 달랐다. 그의 기준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가이고, 예수께서는 체포되기 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기를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바울에게 있어 지식과 능력과 성취가 아무리 많아도 사랑 없이 하나 되기를 힘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높은 성취와 업적을 이뤘고, 이를 그리스도를 알고 알리기에 방해된다면 배설물로 여겨 버린, 그래서 인생에 그리스도만 남은 바울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눈 감고 손 들며 찬양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신앙이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스스로 높이 여기고 성도들과의 관계를 제한적으로 한다면 그 사람은 어린 아이 같거나 육신에 속한 사람처럼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 각 교단들이나 신학 사조들이 스스로 뛰어나게 여기며 다른 교단과 사조를 무시한다면, 이 역시 얼마나 학문적으로 심오하든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것이다.
묵상의 1차 적용은 자신에게 해야 하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조용히 기도해야겠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가 자존심 내려놓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섬기게 하소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제자들의 종으로 내려오셔서 섬기신 인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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