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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4-21 | 능력의 근원, 사랑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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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9.25.(수)

정리: 2024.09.25.(수)

 

고린도전서 4:14-21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개역개정)

 

나의 묵상: 능력의 근원, 사랑

어제는 특별히 수시간 동안 묵상하고 기록했다. 글로 남긴 분량도 평소보다 많고, 내용도 썩 괜찮다고 느낀다. 그런데 정작 충성에 관해 장황하게 쓰고 나서,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모반을 꾀했다. 어제 기도회에서도 요한계시록에 나온 ‘옳은 행실’로 옷 입기(계 19:8)를 구했지만, 정작 부정한 행실로 더러운 옷을 주워 입었다(사 64:6).

그러나 내가 무능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 아니겠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신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씌우셨듯이(슥 3:1-5), 내게 의의 옷, 그리스도의 옷을 입히신다(롬 13:14, 갈 3:27).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는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신다. 고린도 교인들은 언변과 논리로 무장하고 영적 은사와 재능이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교만해졌고 누가 크냐며 서로를 적대했다. 성경과 신학에 해박하고, 찬양에 뛰어나고, 기도에 깊이가 있고, 병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켜도, 이를 자신의 자랑으로 삼아 말하고 다니며 칭찬과 존경을 얻으려는 이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마 6:2; 6:5; 6:16). 그러니 하늘의 상급은 빈궁할 것이다.

바울은 이 능력 많은 고린도교회가 오히려 말만 앞선다며 능력이 있는지는 알아보겠다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말과 재주로 남을 누르고 자신을 세우는 게 아니라, 자신처럼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인하여 수고하고 고난받으며 인내하기를 즐거워하는 능력을 말한다. 오늘 본문을 수록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8월호는 19절(“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각주로 김세윤 교수님의 글을 인용했다. “바울은 교만한 자들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성령의 능력, 즉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 핍박 속에서도 진리와 의와 사랑에 충실하게 하며, 고난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기쁨을 견지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해 볼 것이다.”(김세윤, 『고린도전서 강해』, 두란노아카데미)

내게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경건의 능력과 충성스러운 마음을 구한다. 말한 대로, 묵상한 대로, 글 쓴 대로 살기를 바라며. 그러지 않으면 위선이다. 말과 글로는 하나님을 높이고 삶으로는 하나님을 저버리면, 그 괴리는 나에게서만 그치지 않고 나와 내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말씀이 육화되는 삶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순종으로 가능하다. 예수께서는 아들이어도 아버지께 종처럼 순종하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더하여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썼듯 생활의 정결을 기본으로 포함한다. 대제사장은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패를 붙이고 하나님께 나아갔다(출 28:36; 39:30). 내가 가장 못 하는 것인데, 바울은 이렇게 썼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또한 바울은 스승보다 부모 됨을 강조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의 교사와 스승이 되고 싶어 했다. 스승은 말로 가르치고 권위를 세우지만, 부모는 책임을 갖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녀와 삶을 함께하고 자신의 삶으로 자녀에게 본을 보인다. 고린도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어 했지만, 부모처럼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삶을 내어주고 목숨이라도 내어줄 사랑과 각오는 없었다. 헌신을 피하고 말로 가르치는 자리를 탐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복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수고하고 고난받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호소한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으니.

전에 교회 주일학교 보조 교사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교사 소풍을 갔는데, 승합차 안에서 청년부 누나가 담당한 반 학생들을 위해 이러저러한 것들을 한다고 나누었다. 그 말을 들으며 몹시 부끄러웠다. 나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지, 아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위하여 기도할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 그날 ‘나는 강사지 교사가 아니구나’란 생각에 정교사 지원을 포기하고 군 입대를 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게 복음을 위하여 사람을 사랑하여 수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울과 아볼로 등이 고난을 감내한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바로 사랑이다. 바울은 골육 친척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동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능력의 이유, 예수께서 십자가를 참으신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요 3:16), 나와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를 견디셨다. 사랑이 능력의 근원이다.

하나님, 내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게 하시고,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하기를 기뻐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무엇보다 사랑을 주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니(요일 4:16), 하나님의 성령을 내게 충만케 하옵소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으니(롬 8:18), 주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의 자리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구원하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히 12: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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