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9.26.-27.(목-금)
정리: 2024.09.27.(금)
고린도전서 5:1-13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자유케 하는 진리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09년 8월호가 주석으로 단 찰스 H. 탤버트의 『Reading Corinthians』를 읽으니 본문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은 모든 지식을 가졌고 영적인 사람들이어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도덕법에서 자유로우며 몸에 대한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행을 행한 사람은 근친상간이 영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람의 행동을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표현이라고 자랑했다.”
이는 헬라(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헬라 이원론에서는 영혼과 육신을 구분하여 가치를 다르게 보았다. 영혼은 고귀하고 육신은 부패했다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완전해졌다고 여겼기 때문에, 육신의 일은 제약 없이 거리끼지 않고 행했다.
또한 영지주의의 영향도 보인다. 영지주의란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구원에 이르거나 어떠한 경지에 도달한다는 사상으로, 바울이 활동한 초대 교회 때부터 현재까지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단 사상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을 안 뒤 자신들이 특별하고 권위 있는 지식을 가졌다고 여겨 다른 모든 사람과 사건을 판단했지만, 특수한 자신들은 판단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탤버트가 정리한 대로 고린도 교인들은 육신적 죄를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겨 방치했다. 만약 어떤 교인이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제우스를 섬긴다고 하면 사상과 영적인 문제로 여겨 크게 정죄했을 것이다. 더하여 죄를 범한 사람도 자신이 판단 받기를 거부했으며, 적반하장으로 죄를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운 행위라고 무마하며 정당화했다.
고린도 교인들의 이같이 그릇된 사상들은 공통적으로 사람을 교만케 한다.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지식이 있으니, 남들은 모르는 게 있고 남들은 모르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의식과 무의식에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20) 바울은 오히려 더 낮아지고, 수고하고, 섬기는 사랑과 헌신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르고 배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자신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잘못된 생각들이 오늘날 한국에서는 구원파라는 이단의 형태로 횡행하고 있다. 이들은 깨달음으로 단번에 완전히 구원에 이르렀다고 믿기에, 다른 어떠한 행위를 해도 자유롭고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신천지도 비슷한 생각을 신도들에게 주입한다. 장차 세상을 다스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신천지가 코로나 19 집단 감염과 확산을 일으켰을 때, 병원에 격리된 신도들이 의료진을 종처럼 부리려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 10:45) 얼핏 구원파나 신천지 같은 이단이 세상에서 판단 받지 않는 구원받은 자나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가르쳐 자존감을 높여 주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멸망할 가르침으로 허영과 자만심만 북돋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조건 없이 낮아지며 마음도 낮아져야 하는가?
지난달 여름 수련회에서 8월 9일 묵상한 내용을 옮겨본다. 교회라는 곳에 처음 온 여대생이 고3 때 자존감을 깎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란 창세기 1장 27절을 활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사람이고, 그래서 신이 창조한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데, 그 아들을 인간을 대신해서 죽음에 내주기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도 말해주었다. 나는, 우리는 예수님의 값어치가 있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고도. 이 진리를 마음에 믿고 붙들어 주변 사람들의 거짓된 규정을 담아두지 않는다고도.”
그리스도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은 그리스도에서 비롯한다. 어떠한 가르침으로 자신의 마음을 높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며 생각하시는가가 기준이 된다. 그래서 누구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지기에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우월감과 열등감에서도 벗어난다. 모욕과 박해에도 수고하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낮게 보거나 무시하지 않고 존귀하게 대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예수께서 목숨 내주신 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 자신과 이웃을 모두 사랑할 뿐이다.
교회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잘못된 사상이나, 열등감이나 교만으로 괴로워하는 인간 내면의 문제에도, 그리스도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나님을 힘써 알고(호 6:3),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빌 3:8-9) 갈망하자. 주께서 내 안과 밖의 거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로 걷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회복하신 나를 나로서 온전히 보고, 의를 의로, 죄를 죄로 보기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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