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9.30.(월)
정리: 2024.10.01.(화)
고린도전서 6:1-1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랑
바울은 1장에서부터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동시에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고린도 교인들의 행실이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보다 더 악한 죄들을 저지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조목조목 지적해온 악행은 교회 분열과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첫째로 시작하여 아버지의 첩과 간통한 음행 등이 있다. 6장에서는 성도 간 송사를 다룬다.
바울은 10장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한다. 같은 교회 내 성도들 간의 분쟁을 교회에서 조정하고 해결하지 않고 세속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재판에 임하거나 재판을 접하는 사람들이 교회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같은 송사는 하나님께 영광은커녕 세상으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게 할 것이다.
형제의식이 없기에 대화하고 감싸기보다 척지고 공격하려다 보니 소송까지 하는 것이다. 지체의식이 있다면 오른손이 주먹 쥐고 자기 턱을 치는 게 이상하고 어리석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형제의식과 지체의식이 없기에 아버지 노아의 부끄러움을 본 함처럼 존중 없이 자신이 판단자가 되어 형제를 정죄한 것이다.
이어 바울은 로마서 1장과 비슷하게 구원받지 못한 이들의 죄를 열거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전에는 이런 사람들이었다가 예수를 알고 성령으로 거듭났다. 그런데도 이전의 썩어져 가는 육신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바울이 한탄하고 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잖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짓들을 하는 거요?”
오늘날에는 교회가 아니라 이웃과 언론과 세상에서 묻는다. “너 교회 다닌다며?”, “당신 크리스천이라며?” 신분과 정체성을 물은 다음엔 이런 질문이 뒤따르곤 한다. “그런데 그래도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 역시 드러나면 그리스도인을 넘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비난받을 부끄러움이 한가득이다.
그러므로 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눅 3:8). 본문을 수록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8월호의 묵상 도움글은 안디옥교회를 반례로 들어 이렇게 썼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사람들은 안디옥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구별된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놀라운 복음의 진보를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들이 믿는 바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의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사람들은 그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이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사랑하기보다 미워하여 사람들이 고린도교회를 제대로 된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린도 교인들이었지만,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않는 건 하나님 사랑도 거짓말이라는 증거다(요일 4:20).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할지 말지를 결정하자. 사랑하면 사랑하는 이의 말을 잘 듣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요일 5: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작은 것부터 충성하자(눅 16:10, 눅 19:17). 내가 쓰이지 못한 건 계명에 충성하지 않아서였으니까. 이제까지 망나니였어도, 이제부터는 성도답게, 그리스도인답게, 부르신 그대로 살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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