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0.04.(금)
정리: 2024.10.05.(토)
고린도전서 7:1-9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독신의 은사? 결혼의 유익?
본문을 수록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8월호의 각주 해설을 보니 본문 이해가 편하다. 해설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바울은 성적 방종을 다뤘고, 7장에서는 정반대의 금욕주의를 다룬다고 한다. 결혼을 포기하고 금욕하는 게 더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던 것이다. 이들 역시 표출하는 방향은 반대지만 소위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과 구분하여 추구한다는 점에서 방종과 금욕주의 둘 다 헬라 이원론 사상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방종하는 측에선 영과 몸이 상관없으니 원하는 대로 몸을 쓰고, 금욕하는 측에선 몸을 학대하여 영적으로 고결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몸과 영의 주권이 모두 하나님께 있으니, 몸으로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할 일이다(고전 10:31). 먹고 마시는 건 몸의 일이지 않은가. 이 몸의 일로도, 일상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돌려야 한다.
한편 바울은 유대계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다른 권고를 한다. 유대 전통에서는 독신이 죄가 되고 수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세기의 명령이 중요했다. 결혼을 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사람, 조롱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유대계 사람들에게 바울은 독신도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결혼을 하라는 말인가, 말라는 말인가? 바울은 결혼도 해보고 헤어짐도 겪어봤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유대교에서 쫓겨나면서 강제로 이혼당한 것인지 아니면 사별한 것인지는 모르나, 아픔과 상처를 겪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황희 정승과는 반대로 독신주의자에게는 결혼을 권하고 결혼주의자(?)에게는 자신처럼 혼자 다니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결론이 뭘까?
결론은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은 독신이 죄라고 생각했던 유대계 교인들에게 독신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선물, gift)고, 결혼을 부정하게 생각한 헬라계 독신주의자들에게 결혼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마 19:1-12).
그러니까 독신이든 결혼하든 먹든 마시든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결혼을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음행은 하나님의 영광과 대척점에 있고, 자기 몸에 죄를 지으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흠집 내려 하는 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결혼을 하든 혼자 지내든 음행을 피해야 하고, 음행을 피하기 어렵다면 결혼을 하는 편이 낫다.
바울은 모두가 자신처럼 가정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길 바랐지만, 한편으로 결혼 생활에 큰 비밀이 있다고 했다(엡 5:22-33, 결론부는 31-33절). 이는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형으로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온전히 연합한 우주적 한 교회가 신부로 단장하여 어린 양과 혼인 잔치를 한다(계 21장).
이에 더하여, 본문에서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몸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종합하여 볼 때, 나의 삶을, 나의 몸을 주님께서 주장하시고 주관하셔야 옳다. 내 삶의 주권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몸과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나도 그렇게 사랑하여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기를(신 6:5).
참, 전에 어떤 책에서 자신이 앞으로 독신으로 살지 결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른다면, 독신의 기간 동안 정결하게 자신을 잘 지켜나가고, 결혼하고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배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이 역시 앞서 적은 내용과 결이 같다. 결혼하든 안(못) 하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면 된다.
정리일에
컴퓨터로 옮겨 적는 동안 귀로는 찬양을 듣는다. 유튜브 알고리즘대로 무작위 재생을 해두어 흘러갈 뿐인데, 요한계시록 부분을 적을 때는 소향이 부른 <마라나타>가, “결혼하고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배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를 적을 때는 <그리스도의 계절>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교회와 가정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소서”란 가사가 나왔다. 우연없이 나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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