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리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달리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공동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공동체는 그분의 상징으로 다른 무엇도 아닌 십자가를 택했다. 탄생도, 말로 된 가르침도, 기적도, 다른 사역도 아닌 죽음을 나타내는 십자가를. 게다가 초대 교회 당시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나 로마인에게나 공포와 경멸, 조롱, 저주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쟤네 십자가에 달린 자를 믿는 애들이래~”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일부 교단은 세례 때 세례 받는 자에게 십자가를 그어 주었다. 거듭남, 즉 재탄생을 뜻하는 세례에서부터 죽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대표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인 듯싶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다 이루”셨고, 죽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곧 그리스도인 자신의 십자가로 진다는 의미도 기독 교회가 십자가를 상징으로 택한 의미도 있는 듯하다.
성경에서 이를 잘 나타낸 사람이 바울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고 교회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가르쳤다. 예수께서 복음서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바울은 삶과 죽음으로 “아멘”하였던 것이다.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들은 바울처럼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하지만 죄에 대하여 죽고, 세상에 대하여 죽고, 욕심에 대하여 죽었다는 교회가 이와 반대로 행하여 <PD 수첩> 같은 시사 고발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본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건만 일부 교회는 이 악의 뿌리에서부터 자라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리기까지 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상징이 아니라 ‘장식’으로 삼는 모습을 본다. 십자가는 과연 오늘의 기독교에도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는 걸까.
물론 이런 말을 하는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게서 이런 모습이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감히 십자가를 지고 죽는 삶을 살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간구한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해달라고. 나는 무능하니 전능한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어 달라고.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났으니, 이를 시작하신 이가 끝까지 이루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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