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29.(월)
정리: 2024.07.30.(화)
로마서 5:12-21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상선약수(上善若水)
어제 놀라운 일이 있었다. 요즘 집에서 읽는 책들 중에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이 있다. 어제 아침 읽는 대목에서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사자성어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2시간쯤 뒤 예배 설교에서 노자의 사상이라며 상선약수를 소개했다. 신영복 선생이 기독교인도 아니었고, 설교자도 당연히 노장 사상을 따르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흔치 않은 사자성어를 연달아 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이 우연 없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걸 가르쳐주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선약수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신영복 선생은 상선약수를 아래로 흘러가는 물을 본받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설교자는 상선약수보다 더 높은 선과 기쁨이 있다는 걸 설교했다. 그 선과 기쁨은 해산하는 수고로 사람이 의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이 기쁨을 대학교 1학년 때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대학 선교단체 수련회에서는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건물에서 비신자 수련회를 따로 진행했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에 두 그룹이 합류하였다. 비신자였던 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벅찬 감격에 차서 반짝이는 눈으로 환하게 미소 짓는 걸 보는 건 거대한 기쁨이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라는 한 마디에도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터지는 친구를 보기도 했다.
그 수련회에서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성경 두 군데가 떠올랐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 18:12-13)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4-7)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성경에 비유된 성령의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래서 초반의 나는 불 같은 사람이었다가, 점차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최근에는 바람 같은 사람이 되어간다. 영향은 끼쳐도 존재를 남기지 않는. 그래도 물 같은 특성은 여전히 있다. 칼에 찔리듯 공격과 비난을 받아도 타격이 없고, 높은 곳을 지향하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 그리고 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리는 것.
그렇지만 근 1년간은 내 옛 사람이 성령을 거슬러 변화되기 이전의 성향대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왔다. 우연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귀한 분을 만났지만, 사람을 더 좋아하느라 예수님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렀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격류가 되어 닿는 것들을 파괴했다.
태양보다 뜨거운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바짝 말려서 형체 없는 구름처럼, 그분의 뜻대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비워내셨다.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너무 바짝 엎드려 보이지 않게, 눈에 띄지 않는 공기같이. 그제야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을 회복해간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만나게 하시는 이유와 목적을 되새기며, 그분의 인도에서 나의 유익을 취하려 했던 아간과 같은 범죄를 회개한다.
아담 이후로 물이 하류로 바다로 흐르며 폭이 넓어지듯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한 분 예수께서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그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 내 마음에 오늘도 생각하는 분이 예수를 만나서 알고 믿어서 의롭게 거듭나면 내 기쁨이 넘칠 것이다. 십자가에서부터 흐르는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서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땅 끝의 모두에게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딤전 2:4), 한 사람이라도 잃는 걸 뜻하시지 않는 하나님(마 18:14), 주의 기쁨을 위하여 제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사 그리스도를 알려주소서. 죄와 사망에서 의와 영생으로 옮겨주소서. 그리하시면 내 기쁨이 충만할 것이요, 그분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최상의 기쁨을 알 것입니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소서. 사랑하기에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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