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8.07.10.(목)
정리: 2023.11.27.(월)
마가복음 1:40-45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은혜와 헌신, 순종과 열심, 그리고 복음
은혜받은 자의 자기 행동. 은혜를 은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나로부터나 땅으로부터는 결코 날 수 없고 오직 주님께로부터, 하늘로부터만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은혜는 일방통행이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 수 없다.
나와 내 모든 것을 은혜로 베푸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헌신이라 한다. 헌신은 은혜처럼 자기 발생적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헌신이라 함은, 나와 나의 모든 것, 내 삶을 내가 다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드리는 것이다. 인격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방법은, 내 의지로 나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은혜가 가득하면 순종이 기쁘고 헌신이 기쁘다. 아니, 은혜로 충만한 것 자체로부터 기쁨이 솟아난다. 본문의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다.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사(indignant) 은혜를 베푸신다. 병은 떠나갔고, 깨끗하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께 감사했다. 나병이 있다는 이유로 공동체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병이 옮을까 봐, 그리고 그의 몰골이 흉측하여 그를 멀리했으며, 격리되어 살았기에 외로웠던 그의 과거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다(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the man). 그는 고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받아들임’을 받았다. 그는 씻음 받고 용납되었고, 은혜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그는 헌신과 순종을 자기 방식대로 했다. 아니, 불순종했다. 주님은 엄히 경고(with a strong warning)하셨지만, 그는 ‘왜요?’도 ‘아멘’도 아닌 반응을 보였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말씀에의 순종인 ‘아멘’이지만, ‘왜요?’라고 할 때도 그분은 어린 나를 위하여 친절하게 비밀을 풀어주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내 생각엔 저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열심히 주님의 일을 막은 것이다. 은혜를 받고 처음에 입으로는 ‘아멘’이라 했을지도 모르지만, 행동은 달리했다. 결과적으로 복음이신 예수님(Jesus as the gospel)이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실 수 없게 되었다
(As a result, Jesus could no longer enter a town openly).
하지만 또 하나의 반전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의 복음 자체는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복음의 역동성은 잠시 주춤거리며 심령과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잠시 멈춘 듯하지만, 갈급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복음으로 나아온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복음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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