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8.07.10.(목)
정리: 2023.11.28.(화)
마가복음 2:1-12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 할 일
예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당신이 고치신 자에게 다른 명령을 주신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메시아를 만난 기쁨으로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셨으나, 고침을 받은 나병 환자에게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이번 중풍 환자에게는 능력을 베푸시며 서기관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보게 하신다. 긍휼한 마음은 늘 동일하지만, 그때그때마다 모인 사람, 상황, 장소, 고침받은 사람의 성정 등 특성이 다르며 그때그때마다 보이실 하나님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고침받은 나병 환자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도록 두신 것은 죄인을 용납하신 은혜를 널리 알리고, 순수 혈통 유대인만이 아닌 혼혈 사마리아인들에게도 구원이 임하고 예배할 수 있음을, 즉 예배의 패러다임이 회복됨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고침받은 나환자는 그의 성정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것이 뻔했다. 그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적대적이었다. 어쩌면 바리새인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갈한 심령의 소유자들이 몇 나아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때문에 복음이 그 동네에 드러나게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사례로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은 나라나 지역과 선교 전략을 연관하여 살펴볼 수도 있겠다.
이번 중풍 환자와 네 친구의 경우는 원인과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고, 또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서기관들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셨다. 모든 사람이 예수께서 죄를 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았고, 병 고치는 능력을 보았으며,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한편,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읽혔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이 아니었다. NIV에서 본문 6-8절(Now some teachers of the law were sitting there, thinking to themselves, "Why does this fellow talk like that? He's blaspheming! Who can forgive sins but God alone?" Immediately Jesus knew in his spirit that this was what they were thinking in their hearts, and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hinking these things?)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중심을 능력으로 꿰뚫어 보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땅에서(on earth)’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10절). 죄 사함은 오직 성소로 가서 제사장이 하늘의 하나님과 소통하여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땅에서 두 발로 자유롭게 돌아다니시며 죄를 사하신다. 요한복음 1장의 표현대로 그분이 ‘우리 중에 거하신’ 것이다.
그리고 땅(earth)은 창세기부터 하늘(heaven)과 대립적으로 쓰였다. 하늘은 공중(air)과는 구별되어 쓰이는데, 오히려 공중은 땅에 가까웠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땅의 권세가 사단에게 넘어가 사단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었다. 땅에 간간히 성막과 성전이 있어서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이신 예수(Jesus as the kingdom of God)께서 오셔서 하늘의 능력을 땅에서 베푸신다. 땅의 통치권을 되찾아오시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다. 사단과 사망의 세력 하에 고통받는 세계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복권해야 한다. 또한 당연히, 되찾은 통치권을 제자인 내가 땅에서 가지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려드려야 한다.
'성경 묵상 since 2007-2008.1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2:18-22 | 새 부대가 되기를 (0) | 2023.11.30 |
---|---|
마가복음 2:13-17 | 거절 받는 자들의 친구 (0) | 2023.11.29 |
마가복음 1:40-45 | 은혜와 헌신, 순종과 열심, 그리고 복음 (0) | 2023.11.27 |
시편 50:16-23 | 악인의 감사 (0) | 2023.11.23 |
시편 50:1-15 | 내 중심이 있는 곳은 (0) | 2023.1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