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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12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믿음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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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1.18.(목)
정리: 2024.01.18.(목)


마가복음 2:1-12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믿음

어제도 적었다. 예수께서 원하시면 하실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였으나, 중풍병자를 데려온 네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께 나아오면 주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다른 본문에서의 로마군 백부장은 예수께서 직접 찾아오지 않고도 말씀만으로도 멀리 떨어진 사람을 낫게 하실 것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되었다. 오늘 본문의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면서 죄도 사하신다. 서기관들은 신성 모독이라 생각했으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그들이야말로 신성 모독을 한 것이었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께는 원하시는 것을 하실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이 서기관들의 신성 모독을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이들은 예수께서 ‘할 수 있다’고 하신 걸 ‘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도 은연 중에 예수께서 하실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왜 그런가? 지금의 내 상황이 답답해서다. 내 무너진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하고 이겨낼 수가 없어서, 덤비기는커녕 일어서볼 의지도 없어서다. 그런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안 된다고 예수님도 안 되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걸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마 19:26, 막 10:27).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수님께 절박한 아이를 데리고 나아갔던 아버지처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 역설적 표현에 내 믿음이 나타나고 있다. 믿지만, 믿지 못한다. 주께서 하실 수 있다는 걸 머리로 알고 성경의 기록으로 알고 심지어 내 인생의 과거로도 알지만, 지금 주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시리란 확신이 없다.

그러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성경 속의 하나님이 내 일상의 하나님이시고,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이심을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주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시니,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이시자 앞으로의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내게 하나님을 알리시고 가르쳐주시며, 성령의 선물로 믿음을 주소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나로 믿음에 부요케 하소서(시 70:5, 시 86:1. 약 2:5).

내가 해야 할 두 번째는 앞서의 아버지처럼, 중풍병자와 그 일행들처럼,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주 앞에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먼 데 하나님만이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신다(렘 23:23). 하나님을 피해 떠나서 바다 끝에 가도 그곳에서 미리 나를 기다려 맞이하는 분이다(시 139:9-10).

내가 주 앞에 있사오니, 주는 주의 원대로 내게 행하소서. 내가 모세가 잡은 주의 지팡이처럼 주의 뜻에 순종하리이다. 내 마음에 주의 소원을 두시고 내 육체에 주의 열심을 불피워 일하소서. 주께서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러하시길 내가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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