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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21-34 | 나를 내려놓고 예수께 나아가다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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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5.24.(금)
정리: 2024.05.24.(금)


마가복음 5:21-34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나를 내려놓고 예수께 나아가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데, 회당장이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아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왔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회당장이란 지위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진 않았을까?

실은 야이로는 자신의 체면을 버리고 예수께 나아온 것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라는 새로운 떠돌이 랍비의 출현에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 회당장, 오늘날로 치면 지역 교회의 담임 목사가 예수를 찾은 것이다. 비유가 적절치는 않지만, 개혁주의 목사가 신유 사역자를 찾은 듯한? 직유나 은유라기보다, 경계를 넘어 도움을 구했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회당장은 유대인이라는 한계(?)로 예수께서 딸에게 안수하기를 구했는데, 그래서인지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신다. 그런데 다른 본문에서 예수께 나아온 로마인 백부장은 유대적 사고의 틀이 없었기에, 꼭 안수하지 않더라도 예수께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만 하여도 자신의 집에 있는 사람이 나을 거라고 믿고 구했다. 그리고 오늘 본문 후반부에 나오는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자신이 나을 줄로 기대했다. 세 사람 모두 믿은 대로 되었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대로 행하셨다.
 
이 여인은 야이로 회당장과 달리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몸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기에 종교적으로 율법에 따라 부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야이로와 달리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이 여인은 사람들을 헤치며 예수께 나아갔다. 그녀와 닿은 사람들마다 자신도 모르고 부정해진 것인데, 유대교 관점에서 보면 야이로보다 훨씬 심각한 민폐를 끼치고 다닌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일 때 감염 사실을 알고도 자가 격리를 하지 않고 이동한 것과 비슷하달까? 물론 코로나19는 전염성이고 이 여인의 경우는 상징적 차원의 오염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회당장과 무명의 여인이 예수께 나아왔다는 것이다. 여인은 12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병이 악화되었다. 몇 년 전 가슴뼈에 통증이 생겼을 때 병원 일곱 군데에서 오진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치고, 답답하고, 정녕 나을 수 없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절망했었다. 마약성 진통제까지 썼으나 소용이 없었고, 내가 요청한 다른 검사로 다른 원인을 발견하고 약을 바꾸니 금세 나았다. 검사 결과를 보고 당황한 의사의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에 생생하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야이로도 회당장으로서 인맥과 지위를 동원해 이 의원 저 의원 찾아다니지 않았겠나. 두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내려놓고 예수께 나아왔고, 주께서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그들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자신들도 치유와 회복의 소망을 얻는 기쁨을 주었다. 로마 백부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도 그래 왔지 않나. 답답함과 두려움에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방법을 고민하고, 이 길 저 길을 모색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내 모든 방랑과 방탕에 제동이 걸렸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이 다가온 거대한 벽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삶을 주도하고 운영하려는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 주님으로서 질서와 평안을 주셨다.

오늘 아침 최근에 빌린 『그리스도인의 권리 포기』(김원호 저, 예수전도단)란 책을 보니, 내가 야곱처럼 브니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야곱은 전에도 하나님을 만났었지만,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고 하나님께서 삶의 권리를 포기한 야곱, 즉 이스라엘의 온전한 주님이 되셨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 주님으로서 내게 어떻게 행하실지 나는 모른다. 고난을 주실지, 복을 주실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모든 것이 선하고, 선을 이루는 데에 쓰일 것을 안다. 종은 주를 따라갈 뿐이다. 여인이 자신의 유출병이 나은 것을 깨달았듯, 나도 내가 맑아졌음을 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내게 산적한 문제마저 주께서 해결하셨음을 아는 백부장의 믿음이 내게 있기를.

나는 작은 아이라 드나들 줄도 모르니, 주는 종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로써 인도하소서. 종이 주를 섬겨야 마땅하오나, 소경 같은 저를 주께서 부축하여 인도하시나이다. 주는 선하시오나 악한 자처럼 저를 골탕 먹이려고 험지로 인도하는 분이 아니시나이다. 주는 선한 목자시오니 나를 주의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르시며 먹이시고 채우소서. 내 눈 뜨게 하사 주의 얼굴과 주의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최악의 인간인 내게서도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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