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5.30.(목)
정리: 2024.06.01.(토)
마가복음 6:14-29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제자들의 전도로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살고 전하는 것, 하나님 나라의 선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낸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자들 즉 성도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것을 명했다(살전 5:16-18). 얼마 전 묵상에서 크고 작은 모든 상황과 사건에 감사하는 내용을 적었다. 오늘도 그런 감사들이 있다. 아침에 씻어야 하는데 집에 있는 욕실 두 곳 모두 다른 식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안방 침대에 잠깐 누웠다. 그 위치에 폼롤러가 있어서 발목을 올려놨는데,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며칠째 풀지 못한 다리를 푸는 10분이었다. 그래서 일터에도 정확히 10분을 지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발목을 푸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서 있고 버티지 못했거나 어제처럼 계단을 올라가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하다 된장통을 엎었지만 조금만 흘렀다. 어제는 김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다 떨어트릴 뻔했는데 붙잡아냈다. 만약 김치통이 바닥에 떨어졌다면 대참사가 날 뻔했다. 매장에 손님들도 가득한 상황이었다.
범사에 감사하는데 시험(?)이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욥에게 사탄이 시험하는 것만큼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래도 감사할래? 이래도?’라며 사건‧사고들이 일어난다. 그래도 그보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더 밀접함을 알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최선을 이루실 것을 알기에 감사한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범사에 마음을 지켜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더라. 그리고 내 전적 무능과 무지를 인정하기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범사에 구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배워서 익힌 것을 할 때도, 다윗처럼 거듭 하나님께 묻고 솔로몬처럼 기도한다. 나는 작은 아이라서 칼질할 줄 모릅니다. 나는 작은 아이라서 오토바이를 탈 줄 모릅니다. 나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내게 주신 기술을 내 실력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숨 쉬는 것, 걷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내 능력은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평상시 표정이 없다. 지적을 자주 받아도 자존감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칭찬을 받아도 올라가지 않는다. 그냥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같다. 고난과 환난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요동하거나 불안하지 않은 것은 감사한데, 하나님을 기뻐하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 때문일까. 그렇다면 여전히 내 기쁨의 이유가 하나님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박국처럼 완전히 망한 채 하나님을 즐거워하겠다는 고백(합 3:17-18)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 보다.
본문의 세례 요한은 나처럼 죄악되지 않고 나 같은 죄인을 과거 나단 선지자처럼 지적하다가 이세벨 같은 헤로디아의 궤계에 걸려 억울하게 죽고 만다. 그것도 재판을 받고 사형장에서 처형된 것도 아니고, 왕의 허황된 맹세 때문에 옥에서 참수되어 목만 들려 나왔다. 이러한 일을 겪는 세례 요한 자신과 제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감사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를 바라셨던 것 같다. 잡히시던 날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하자 하셨다. 당신은 장차 올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히 12:2, 벧전 1:8).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워서 도망쳤다. 이들이 다시 예수의 길을 가는 건 성령께서 임하셔서 충만함을 받고 나서다.
내게도 성령 충만하게 하사 이 죄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게 하시기를. 이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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