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1.30.(수)
정리: 2023.01.11.(수)
마가복음 6:45-5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머릿속 폭풍을 뚫고
정작 하지도 않으면서 할 게 많다는 이유와 부담감으로 집 안에 눌어붙은 내가 수요기도회를 맡을 수 있을까. 머리와 마음으로는 계획과 실행을 다 하지만 정작 수요기도회 참석조차 어려워하고 있는데. 담당자를 하겠다는 건 역시 충동성의 발로일까.
본문에서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앞서 보내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내게 필요한 건 기도회 담당을 하냐 마냐가 아니라 기도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은비하고 유일한 시간을 보내려고 주님은 다른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나 역시 방해거리나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이 필요하다. 혹, 집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충동적이고 깜냥이 없는 머리와 마음은 가능하다고 그린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 동안 살아왔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새벽기도회를 가야 할까? 본문 각주에서 예수께서 새벽에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설명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몸이 축난다. 이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키려고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오늘도 아침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하게 있었다. 과로로 목이 부은 것도 한몫했다. 쉬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쉬면서 나를 소진하는가 충전하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거의 전자를 택하면서 후회해왔다. 다행히 자정을 전후로 이 묵상을 하고 있다. 막상 하니 사는 느낌이다. 아침에 하면 더 좋았겠지만, 하나님의 시간대에서 오늘은 이 시간에 하는 게 그 분의 뜻 가운데서 괜찮다고 믿는다.
내일부터는 밤 기도를 가볼까. 구상만 하고 그칠 수도 있지만, 기도가 필요하니까. 새벽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도 밤에 뜨겁게 기도했듯이. 내일 한번 이 나를 쳐서 작게나마 복종시켜 보자. 아, 어차피 내일 저녁에 등주교회에서 브라운워십이 와서 예배할 것이다. 내일 그 자리에 있겠다. 주 얼굴 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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