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5.05.07.(수), 13.(화)
정리: 2025.07.23.(수)
마태복음 13:24-30, 36-43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천사의 방문보다 중요한 것
우연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에, 올해 초 지금의 일터에서 더 일하기로 결단한 계기를 4월 21일에 다시 만났었다. 그 사건을 27일 일요일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나누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담당 교역자는 이 일로 더 하나님께로 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평일이 되어 일을 하며 묵상하던 중, 일련의 생각이 번뜩였다.
올해 초 겨울, 마감 이후에 방문한 손님을 돌려보내고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돌려보낸 손님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쫓아가서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 뒤 아브라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했었다는 구절(히 13:2)이 떠올랐다. 그 ‘천사’는 4월 21일에 다시 찾아왔지만, 나는 이 날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다시 보내주시기를 구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천사(angel)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적 존재다. 그래서 그 사람은 사람이지 천사는 아니나,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성경을 상기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등 하나님의 메시지를 내게 전달한 셈이었다. 그러니 내게 있어 천사의 역할을 한 것과 같았다. 그 덕에 내가 이곳에서 일할 의미와 의지를 갖지 않았는가.
그래서 역할을 다한 그 사람이 내가 일하는 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 또다시 만나는 것이나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내주시는 복보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다(시 73:28). 하나님을 환기하게 해준 특정 인물이나 대상, 단체, 교회를 우상시‧절대화‧전적 의존하면 안 되는 건 물론이다.
오늘 본문에선 예수께서 무리에게 베푸신 비유를 설명해주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왔고, 구했다. 주께서는 뜻을 구하는 자에게 알려주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내게 일어난 사건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주께서는 내가 부여하려는 의미 너머 제대로 된 의미를 알려주셨다. 사람 너머 하나님을 보게 하셨다. 내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라는 것(마 6:33)을 알려주셨다. 사람에게 매달리기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묵묵히, 꾸준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하고 살고 죽기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가져오셨다(고전 10:31). 아브라함처럼 누구를 대하든 선대하고, 예수님처럼 누구를 대하든 주를 대하듯 하게 하셨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자꾸만 엇나가고, 다른 목표를 넘보고, 내 욕망을 하나님 뜻으로 포장하려고 시도하는 나를 돌이키셔서, 주를 올바로 보게 하신다.
나아가 부르심을 재자각하게 하신다. 모세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지팡이.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역할에 쓰는 도구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을 바로 보고 그분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죽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지만 하나님께 붙들릴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에, 나는 나를, 내 정과 욕심을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갈 2:20, 갈 5:24),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계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그 천사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길 바라지만, 5월 13일 오늘 출근하며 내 안에 울리는 찬양 이 내 중심을 다잡는다.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의 후렴구다. “나의 유일한 고백의 대상은 오직 아름다운 당신뿐입니다.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주여, 나의 주여.” 내가 사모하고 예배할 대상은 사람이나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두려워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합당한 경애(敬愛)를 드린다(롬 8:38-39). 이것이 나의 목적이요, 내게 귀한 복이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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