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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마태복음 13:10-17 |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란?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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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04.25.(금), 29-30(화-수), 07.22(화)
정리: 2025.07.21.-22.(월-화)

 

마태복음 13:10-17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여 당신과 그의 나라를 알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 세계를 궁금해하고 알아가며, 질문과 호기심이 많아 늘 묻고, 들은 답을 자신의 세계로 수용하여 믿음으로 구축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준비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지 않은가.

반면 자신의 세계를 오래 구축하여 관점도 세계관도 바꿀 용기가 없는 사람은 박복하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질 것을 죽는 것처럼 두려워하다 못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기는커녕 외면하고 배척하는 혐오를 키운다. 들어보고 알아보고 물어보고 대화라도 해보면 좋을 텐데, 미리 반대하는 태도를 세우고 나서 이유와 논리를 끌어다 붙인다. 영원과 영적인 진실에 대한 것뿐 아니라,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통령 탄핵과 파면 과정에서 극우 세력은 헌법도, 형법도, 민주주의도 뭔지 모르면서 특정 편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반대편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폭력으로 대했다. 일반 시민이건 법원이건 상관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욕하고 때리고 부쉈다. 이들이 믿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게 밝혀졌는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맹신이었다.

나는 가짜 뉴스 검증 그룹을 운영하면서 베뢰아 사람들의 자세를 인용하곤 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과연 그러한지 따져보고 충분히 검토했다. 전달하거나 가르친 사람이 권위자라고 해서 무턱대고 믿지도 않았고, 작정하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타당성을 검토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베뢰아 사람들의 믿음은 견고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교회에서 보편적인 감정 기반의 신앙이 아니었기에, 아마 ‘영혼의 어두운 밤’에 빠질 가능성도 적었을 듯하다.

이런 베뢰아 사람들의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다. 어린이들은 세계를 탐구하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들에게는 ‘왜?’가 일상 언어다. 답을 들어도 만족하지 않고 다시 그 이유를 묻는다. 세계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님을,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사랑하며 관심하고 있을까? 이미 복음을 소유했고 믿었다고 더 알아가길 멈추거나, 이미 어느 정도 안다고 교만해 있진 않은가?

4월 27일 예배 중에 내가 기본도 못 지켰다는 걸 알았다. 몇 주 전 나는 청년부 모임에서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동안 너무 놀기만 한 것 같았고 이제는 성경 공부를 좀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청년부에서는 올해 내내 성경 공부를 진행할 계획이 없었다, 이에 관하여 2-3주간 설명과 설득을 들으며 납득했고, 며칠 전엔 예배 도중에는 선교지에서 성경부터 들이미는 게 아니라 선교지와 선교지 사람들에 녹아드는 게 먼저라는 게 떠올랐다. 청년부 사역도 이와 마찬가지다.

물론 성경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때와 상황이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모든 걸 빨리빨리 처리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때와 생각은 나와 달랐다.

나아가 선교지에, 사역지에 녹아들고 어울리는 걸 거창하게 성육신적 사역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성육신하시고 3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는 사역에 나서지 않고 인생을 사셨다는 걸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사는 것 역시 성육신적 사역의 개념에 포함될 것이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초도 잊은 미숙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셨다. 나는 더 어린아이와 같이 눈앞의 세계를 모르는 자로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인생을, 사람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삶들과 살아가는 법을. 내가 어린아이란 걸 인정해야 성장이 있고 배움이 적용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던 대학교 2학년 겨울 수련회가 생각난다. 이미 여러 차례 묵상 지면에 적은 일화다. 선교단체의 리더 지원 심사에서 탈락하고 억지로 가다시피 한 수련회였다. 역시나 5박 6일 중 마지막 금요일 밤까지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자정을 넘겨 본당에 가서 혼자 기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본당에 두 선배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떠나기까지 기다리다가 잠들었고, 그들은 떠나기 전 나를 깨웠다. 드디어 홀로 남아 <빛 되신 주>로 찬양하다가 발포 비타민 같은 작은 빛이 퍼지며 어둠을 녹이는 듯한 광경을 보았고, 속에서부터 겉으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강단으로 걸어나와 서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며 두 형상을 보았다. 하나는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었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유령, 말 그대로 죽은 존재였다. 다른 하나는 갓 태어나 피와 양수로 칠갑을 한 채 울고 있는 아기였다. 누가 도와주지 않고 버려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 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

본능적으로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다 컸다고,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교만하게 여겼지만 실상은 생명력 없던 지금의 나를 유지할 것인가, 나의 무지와 무력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나를 맡길 것인가. 나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는 에스겔 16장 6절의 말씀에 기대어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살고 싶습니다.”

 

 

그 뒤로 15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살아는 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시 118:17)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진을 방해해온 것 같다. 여전히 믿음이 장성하지 못한 내가, 여전히 한없는 사랑과 자비로 나를 버리지 않고 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지금 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15년 넘게 쌓여온 더러운 옷을 성령의 비추심으로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엡 4:13)에 전념하는 것. 그래야 내가 주도적으로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나를 자연스럽게 쓰셔서, 배우고 확신한 일(딤후 3:14)을 권하고 가르치는 것에 전념(딤전 4:13)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을 반대하여 완악하게 굳어버린 ‘어른’의 심장을 녹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재탄생하도록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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