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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1-9, 18-23 | 너의 밭을 내가 갈리라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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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밭을 내가 갈리라

작성: 2025.04.16.-17.(수-목), 21-23(월-수)
정리: 2025.07.18.(금)

 

마태복음 13:1-9, 18-23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개역개정)

같은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 해변에 앉으셨다. 순식간에 바닷가를 따라 무리가 모여들어 예수께서 할 수 없이 배에 오르셨다. 예수께서 배를 설교단 삼아 회중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농부가 씨를 뿌렸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 위에 떨어져서 새들이 먹어 버렸다. 더러는 자갈밭에 떨어져서 금세 싹이 났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해 해가 나자 곧 시들어 버렸다. 더러는 잡초 밭에 떨어져서 싹이 났으나 잡초가 짓눌러 버렸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농부가 생각지도 못하는 큰 결실을 맺었다. 너희는 듣고 있느냐? 정말로 듣고 있느냐?”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 이야기에서 배워라. 누구든지 천국 소식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에 뿌려졌으나 겉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 들은 것을 악한 자가 와서 낚아채 간다. 이것이 농부가 길 위에 뿌린 씨다. 자갈밭에 떨어진 씨는 듣는 즉시 뜨겁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성품의 토양이 없다 보니 감정이 식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만다. 잡초 밭에 떨어진 씨는 천국 소식을 듣기는 듣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갖고 싶고 더 얻으려는 염려와 망상의 잡초 때문에 숨이 막혀서 아무 소득이 없는 사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그 소식을 듣고 받아들여서 생각지도 못한 큰 결실을 맺는 사람이다.” (메시지성경)

 

나의 묵상: 너의 밭을 내가 갈리라

나는 자갈밭이었다. MBTI 성향도 그렇고, 한국 교회의 배경에서 나는 수련회 등 열렬한 기도와 찬양의 순간에 뜨겁게 하나님과 만났다. 하나님과의 조우는 영적‧지적‧정적 등 전인적인 변화와 방향 전환을 일으키지만, 나는 특히 감정적으로 뜨겁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걸 좋아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 식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말았다. 사람이 자신의 이성과 감정과 여타의 한계를 초월하는 경험에 사로잡힌다 해도, 지금의 몸을 가지고 지금의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까지나 천국에 있는 감동을 유지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도 산에서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보이시자 황홀해진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이곳에서 집 짓고 살자고 했을 때, 주께서는 육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다. 산 아래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다(눅 9:27-43). 주께서는 주린 자들을 보시며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마 26:11, 막 14:7, 요 12:8)으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눅 9:13)고 하셨다. 즉 우리는 이 땅에서 회복을 위해 부름 받았다.

 

김성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지만 산 위가 그립고 이 세상에서의 삶이 괴로운 나 같은 사람은 그 차이가, 이 괴리가 고통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 천국이지 이 땅에 아닌 것 같다. 실은 주께서 나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로서 살며 하나님 나라를 일구라고 부르셨는데도,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을 받을 때처럼 고통에서 벗어나 숨 쉬고 싶을 따름이다.

부르심을 잊거나 외면했으면서도 자신의 회복만을 바라니,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게 마약처럼 되어버린다. 하나님을 ‘만병통치약’으로 삼는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더 요원해지고, 그럴수록 나는 더 영혼의 깊은 밤 속으로 어둡게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인생의 풍랑에 감동이 식고, 감정이 상하고, 상한 마음이 고난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2007년 초 겨울 수련회에서부터 나는 영적인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심장을 강철 철사로 칭칭 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한 듯했고, 기도해도 찬양해도 아무 감동도 없고 집중할 수가 없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도서관에서 과목을 소개하는 『교육심리학』 2쪽을 펴놓고 속으로 ‘내가 왜 이걸 공부하고 있지?’라는 질문만 2시간을 했다. 모든 것이 그랬다. 의미를 찾지 못했기에 목적의식도 없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신문을 읽다가 내가 우울증인 걸 알았다. 한참 뒤에는 16세기 사제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것도 알았다.

감사하게도 신문을 읽고 얼마 후 군 입대를 했고, 그것에서 하기철 의무관님을 만나 즉시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부르신 목적이 있다는 하 대위님의 말씀에 나는 인생의 열심을 되찾았다. 2008년 10-11월쯤이었다.

그 몇 달 전 여름 수련회는 개인적으로 최악의 수련회였다. 조원들 몇몇과 융화되지 못했고, 나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비참한 기분만 가득했다. 5박 6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밤, 5일간의 집회에서도 소위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한 채, 하나님께 뭐라도 따지고 싶어 숙소인 현대성우리조트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홀로 주저앉아 기도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릴 때, 이제껏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가사와 곡조의 노래가 귀가 아닌 곳으로 들려왔다. <너의 밭을 내가 갈리라>고. 나는 수련회 책자에 가사를 받아 적었고, 나중에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악보를 만들었다. 언젠가 등록해야지, 했는데 벌써 15년이 넘게 흘렀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가사를 적은 책자를 지금까지 보존해주셨고, 나도 악상을 기억하고 있다. 어찌 잊을 리가.

그보다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건, 주께서 약속하고 말씀하신 대로 내 밭을 오랜 시간에 걸쳐 갈아오셨다는 것이다. 나를 자갈밭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신천지와의 충돌, IVF에서의 훈련,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러 사건들의 경험, 성경과 기도, 인생의 풍파로 내 뼈 같던 자갈들을 날려버리시고, 비와 햇빛으로 나에게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오셨다. 감정이 뜨거워져야 믿음을 꽃피우는 게 아니라, 기록된 진리를 먼저 믿음으로 붙들고 감정 등 나머지 전인격을 회복하는 순서로 뒤바뀌었다. 나아가서는 나라는 개인도, 나를 둘러싼 상황도 칠흑이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과 그분의 선하심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곤고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마침 점점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뭐하러 못하는 일을 하면서 구박받아야 하는지 이유와 의미를 잃어가던 차였다. 그놈의 돈 때문일까. 돈만 아니면 일을 굳이 연장해서 하진 않았을 텐데. 어차피 지금도 돈은 없고 통장엔 천원이 전부다. 월말에는 또 카드사에서 연락이 올 터다. 그래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얼른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었다.

그러던 21일 월요일이었다. 눈앞에 내가 한 학기 연장 근무를 택한 이유가 와 있었다. 보는 순간 확신했다. 최선이 있으면, 나머지 좋은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목적의 초점이 잡히니 다른 일상적인 것들에도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일하는 게 즐거워지기까지 하고, 고객 응대를 천사 대하듯, 주님 대하듯 했다. 업장에서 나오는 찬양 가사가 의미를 띤 새 노래로 들렸다. 다시 기도하게 되었고, 기도가 간절해졌다.

내 밭을 기경하셔서 천국의 열매를 맺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주는 나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최선을 믿게 하시고, 소망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신다. 기도하기로는 내 눈을 밝게 한 그 이유와 날마다 재회하길 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의 때에 최선으로 인도하신 것을 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내가 아는 모두가 인격적으로 만나고 알기를 갈망한다. 주는 열방의 찬양을 받으소서.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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