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1.21.(목)
정리: 2024.11.21.(목)
마태복음 2:13-2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요셉의 여정, 임마누엘과의 동행
헤롯은 하나님을 따라야 할 유대인이었지만 대신 자신의 욕망을 따랐고, 외국인인 동방 박사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헤롯과 같은 사람인 걸 알았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데(갈 5:24), 내가 소속을 거부했었다. 이러한 부끄러운 일은 셀 수도 없다.
요셉도 동방 박사들처럼 주의 지시에 순종했다. 그런데 그동안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생에서 가장 기뻐야 할 혼인이어야 하는데 약혼녀가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그래도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용히 파혼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내를 맞이하라 하신다.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거라고.
로마의 명으로 산달이 된 아내를 데리고 먼 길을 가는데, 베들레헴에 왔을 때 산통이 와서 몸을 풀 곳이 급히 필요했다. 그러나 빈 방이 없어 마구간에 산모를 누였다. 이게 무슨 고생이람.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아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놀랄 만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아내가 친척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 태동이 있었고, 엘리사벳은 예언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근처 양 치던 목자들이 찾아와 축하를 한다. 아기를 데리고 성전에 갔더니 선지자들이 축복한다. 나중에는 멀리 동방에서 사신단이 찾아와 헤롯 왕이 아니라 아기에게 왕을 알현하듯이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다. 요셉은 감탄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아이를 잘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지만, 다시 고생이 찾아왔다. 그것도 생명을 앗아갈 위협이. 꿈에 주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요셉은 깨자마자 아내를 깨워 아기를 데리고 급히 이집트까지 내려간다. 마치 과거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 급하게 옷을 입고 떠날 채비를 한 채 빵도 부풀리지 못하고 딱딱한 과자를 구워 서서 먹었듯이 급하게 움직였다.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것과는 반대로 요셉은 이집트로 들어간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게 웬 난데없는 피난과 타향살이인가. 요셉 일가는 헤롯의 칼을 피해 한순간에 난민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이집트 생활도 익숙해질 때쯤, 이번엔 주께서 이스라엘로 들어가라 하신다. 이스라엘 여인 나오미가 피난 갔던 모압에서 귀환하듯이. 하지만 학살자 헤롯의 아들이 헤롯 왕가를 계승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다고 하셨는데도, 이집트 생활 동안 믿음이 약해졌는지 요셉은 아켈라오의 존재가 두려워 이스라엘로 가기를 주저했다.
기껏 돌아가라 해서 가려는데 그 헤롯의 아들이 왕이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죽이시려는가? 요셉은 출애굽한 조상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가나안 거민들이 두려워 진입하지 못했던 것처럼 무서워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요셉에게 지시하여 요셉은 이스라엘 북쪽 끝의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했다. 이스라엘 중심지로부터 멸시받고 심지어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던 변방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하는 길이다. 이 길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원망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눈물로 씨를 뿌린 길을 어느 날 뒤돌아보면, 밟아온 땅마다 열매와 이삭이 가득할 것이다. 마태복음은 요셉의 여정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설명한다(1:23, 2:15, 2:23). 요셉이 순종하여 하나님을 따른 길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길이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래서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불릴 만하다(1:19). 반면 헤롯의 학살은 하나님께서 예언을 이루려 하신 게 아니라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기록되었다(2:16-18).
내가 헤롯의 길이 아니라 동방 박사와 요셉의 길로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내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의로운 정도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말은 쉽지 삶은 쉽지 않다. 전신갑주(엡 6:10-17)를 두르지 않으면 공격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더워서 잠시 투구라도 벗을라치면 화살이 날아온다.
그래서 지킬 만한 모든 것보다 살펴 마음을 지켜야 한다(잠 4:23). 그리고 요셉처럼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도록 성경과 기도에 착념해야 한다. 기도, 말씀, 그리고 생활. 나는 생활이 잘 안 됐는데, 이제부터라도 유념하여 악을 이기고 의의 순종을 이루자. 내게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나타나고 성취되도록. 그 나라이자 그 의이며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혹 요셉처럼 간혹 흔들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다시 인도하셨듯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을 신뢰하고 다시 하나님을 붙들기를. 요셉이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든 눈에 보이는 세상을 두려워하든, 그의 품에선 어느 때나 예수가 함께 있었으니. 오 임마누엘. 세상을 구원할 구주는 연약한 아기로서 겸손하게 사람에게 의지해 먼 거리를 다녔다. 훗날 풍랑이 이는 바다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 당시의 요셉에게도 필요했다. “나다. 두려워 말라.”(요 6:20, 6:50) 내가 의식하든 못하든, 주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전진하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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