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1.20.(수)
정리: 2024.11.20.(수)
마태복음 2:1-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헤롯과 동방박사들
헤롯은 자신이 현재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었기에, 다른 왕이 나타났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왕가를 존속하기 위해 예언의 아이를 죽이려고 방문한 동방의 박사들에게 아기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이로써 알아낼 수 없자, 참혹한 영아 학살을 자행한다. 마치 과거 이집트 파라오가 저지른 히브리인 남아 학살령이나, 다윗이 왕좌에 오르는 걸 막고 자신의 혈통으로 왕가를 이어가고자 했던 사울을 연상케 한다.
헤롯은 여로모로 ‘유대인의 왕’으로는 적격하지 않았다. 다윗의 후손이 아닌 데다 헬라 혼혈에, 자신이 모든 권세를 가진 왕도 아니었다. 근방에서는 로마가 임명한 유대 총독이 자신을 견제하고 있었고, 자신의 위에는 로마 황제가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에 있고(마 1:1-16), 예언에서 말해온 그 왕이었다. 그는 스스로 힘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억지 위엄을 부리거나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순종에만 집중했다. 왕궁이 아니라 가장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겸손하다 못해 비천하게 태어났지만, 로마 황제보다 높은 권세를 지녔다. 세계 지도의 일부분, 세계사의 한 자락만 차지한 로마와 달리, 창조의 능력인 그는 우주 만물을 다스린다(히 1:1-3). 헤롯은 자신을 위해 갓 태어난 아기들을 죽였지만,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드렸다(딤전 2:6).
동방 박사들은 어떨까. 이들은 유대인은커녕 헬라인도 로마인도 아니었다. 페르시아계나 아랍계로 추정되는 이들은 유대교였던 적도 없다. 하지만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천문을 관측하는 이들의 눈에 한 별을 반짝이게 하셨고, 수많은 별들 중에 가장 특이한 별을 본 이들은 조국의 왕에게 청했는지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먼 길을 와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어쩌면 동방 박사들은 당연히 왕궁에서 왕이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정작 헤롯도 금시초문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 대신 지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해온 신비를 따르기로 했다.
이들은 이동하는 별이 신기했으나 별에게 경배하지 않고, 별이 가리키는 대상인 연약한 인간 아기에게 경배한다. 어딜 봐도 특별할 것 없고 부유한 집안도 아닌 곳에 있는 아기. 부모들이 비단옷 입은 사람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헤롯 왕궁과 대조적이었다. 이 아기가 정말 왕일까? 의문이 들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별이 가리키는 자리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배합을 열어 자신들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을 드렸다. 유향과 몰약은 동방의 특산품이었다.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드리는 것, 30년쯤 뒤 베다니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예수께 부은 것에 비견될 만하다. 경배는, 예배는 이러해야 한다. 모든 삶이 거룩한 산 제사가 되는 온전한 예배로(롬 12:1).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신 6:5).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게 아니라(계 3:15), 항상 타오르는 성전의 등불처럼. 형식을 갖추고 모여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삶의 예배로(고전 10:31).
그리고 얼마 전 블로그에 올린 2009년 12월 군대에서 쓴 글에서처럼, 동방 박사들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유향과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예물이었다. 베다니 마리아가 부은 향유도 예수님을 장사지낸다는 의미였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알고 향유와 함께 눈물을 쏟아부었다.
유대계였던 헤롯과 유대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성경의 예언을 알았지만 예수를 배척하고 적대했다. 정작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방인 점성술사들이 전심으로 예수를 경배한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 중에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반대로 동방 박사들처럼 하나님을 모르지만 알기에 힘쓰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그 길을 가려고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분도 언젠가 예수를 만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어제 묵상에서 적은 대로 관념상의 하나님이 아닌 ‘임마누엘’로 하나님을 얻기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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