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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3 | 심령이 부요한 자와 심령이 가난한 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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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1.27.(수)
정리: 2024.11.30.(토)


마태복음 5:1-3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개역개정)

 

나의 묵상: 심령이 부요한 자와 심령이 가난한 자

묵상집을 펼쳐보고 순간 당황했다. 본문이 너무 짧은데? 본문은 예수님의 팔복(八福)) 설교 중 첫 번째 복을 실었다. 여덟 가지 복을 다 적어도 긴 분량이 아닌데, 하나만 달랑? 혹시나 하여 뒤 페이지들을 넘겨보니 나머지 복들이 하나씩 본문에 배치되어 있었다. 일부는 한 절이 한 본문이었다. 한 절만 가지고 묵상할 수 있나? 나는 마틴 로이드 존스같은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한 절로도 깊이 있는 묵상을 한 적은 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의 길이가 아니다. 묵상 전에 기도하는 대로,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도움이 없다면 나는 단 한 구절도 이해할 수 없고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다. 그러나 지혜와 계시의 영(엡 1:17)인 성령께서 말씀을 아는 빛을 비춰주시면,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다 알 수 있다. 성령께서는 앞서 언급했듯 성경의 제 1저자고,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고전 2:10)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내게 친절한 인도자가 되신다면, 나는 좌우로 치우침 없는 성경 이해를 얻고 순종의 길을 갈 것이다.

감사하게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10년 1월호에는 묵상을 돕는 문장과 주석이 달려 있다. 이에 따르면 팔복 중 오늘 본문인 첫 번째 복은, 팔복 전체를 이끌어가는 표제라고 한다. 나머지 일곱 가지 복도 다 이 첫 번째 복 안에 포함되며 첫 번째 복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역설적 복들이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와 그럴 때 받는 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팔복이라 함은 구분된 여덟 가지 각각의 복이 아니라, 총체적인 하나의 복을 다각도로 본 것이다. 마치 성령의 열매가 아홉 열매들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를 다각도로 본 것이듯(갈 5:22-23).

그리고 각주로 달린 『IVP 성경 배경 주석』에서는 팔복을 포함한 예수님의 산 위에서의 가르침, 즉 산상수훈(山上垂訓)이 천국의 윤리를 다룬다며, 어제 묵상한 예수님의 세례 요한을 이은 메시지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에 반응하여 나아온 사람들에게 회개한 천국 시민의 생활 방식을 알려주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심령이 부요하다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일 텐데, 예수님의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는 곳간을 늘린 부자(눅 12:16-21)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 부자는 농사에서 소위 대박을 쳐서 많은 수확을 거두었고, 소출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창고를 확장하고 가득 채웠다. 그는 앞으로 몇 년은 걱정 없이 든든하게 살 거라며 마음을 놓는다. 오늘날로 치면 부도날 일 없는 통장에 천문학적인 돈을 넣어놓고, 노후와 자식 걱정을 끝낸 부자일 것이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에 거리낌이나 제한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닌 걸 주일학교를 다녀본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그날 밤 부자의 영혼을 데려가시면 그 곳간은 누구 것이 되겠냐고 물으신다. 그는 정작 영혼과 영원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하신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세례 요한에게 비난받고, 예수님을 적대한 유대 지도자들도 심령이 부요한 사람들이었다. 대제사장 무리는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아 챙기고, 바리새인들은 경건의 모양을 갖춰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취했다(딤후 3:5). 이들은 재물과 명성에 취해 마음이 가난할 새가 없었다. 한편 헤롯은 사람을 살리게도 죽게도 하는 권력에 취해 마음이 부요했다.

반대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어떠할까. 소유가 없어서 마음도 가난해졌을 수도 있고, 사랑을 잃고, 믿음을 잃고, 소망을 잃고, 사람을 잃고, 나라를 잃은 사람일 것이다. 삭개오처럼 돈은 많으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여 위축된 사람일 수도 있고,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바울처럼 아내를 잃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인생이 그저 허무하고 마음이 공허한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심령이 부요하냐 가난하냐는, 겉으로의 조건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다. 앞서 적었듯 삭개오는 돈이 많았지만 심령이 가난했다. 실은 모든 사람이 심령에 구멍 하나씩이 나 있다. 심령이 부요한 사람은 이 구덩이를 소유나 칭찬이나 지위나 권력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이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구멍을 채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일 뿐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깊은 빈 공간의 공허와 아픔을 인하여 완전하신 하나님을 찾는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이렇게 적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 깊은 상실감에 내 모든 희망이 붕괴된 적이 있었다. 창고 뒤편에서 홀로 찬양했다. “이 몸에 무슨 소망 있나. 이 생에 무슨 희망 있나. 아무것 의지할 것 없네. 예수의 보혈 그것뿐일세.”(김도현, <보혈> 가사 중) 그러자 깊은 위로와 충족이 내 안으로 몰려왔다.

 

김도현, <보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걸 발견하고 인정하며,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길 발한다. 특히 이번 크리스마스에, 이 땅에 오신 주 예수님을 당신의 주로 맞이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1073 워십, <주가 필요해>

 

소향,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원곡: 송정미)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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