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2.03.(화)
정리: 2024.12.03.(화)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개역개정)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 (메시지성경)
나의 묵상: 의에 주리고 목마르니 감사합니다
지난주 월요일이었나 화요일이었다. 첫눈이 폭설로 온 날이었다. 일하는 도중 오토바이를 타야 했는데 눈 때문에 안장에 비닐을 씌우느라 헬멧 착용을 깜빡 잊었다. 짐칸에 헬멧이 없어서 더 생각나지 않았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데 내리는 눈이 얼굴로 날아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어찌어찌 가긴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결국 사고가 났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골목에서 차가 튀어나온 것이다. 다행히 질량 큰 SUV와 충돌하진 않았지만, 피하려고 핸들을 틀자 눈이 쌓여가던 방지턱 위를 오르는 바퀴가 미끄러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왼무릎을 붙잡고 비명을 참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차에서는 운전석에서 젊은 여자분이, 다른 쪽에서는 나이 든 여자분이 내렸다. 모녀 같았다. 운전자는 내게 괜찮냐고 물어봤고, 나는 괜찮다며 사고 현장을 촬영하고 운전자의 연락처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분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던 길인데, 왜 연락처를 물어보고 사진을 찍냐고 경계하며 물어봤다. 어찌어찌 연락처를 받아 돌아왔는데, 목사님이 접촉이 없다면 차량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아픈데 내가 무슨 요구를 할까봐 불안해할지도 모를 차주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도로교통법을 잘 몰랐고, 연락처를 받고 촬영한 것으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를 걱정했다. 차주는 내가 번호를 달라고 해서 오해했고, 아이가 신생아라 아파서 걱정이라며 내일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장했다. 나는 아기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며칠간 서로에게 감사와 축복을 전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2-3일 뒤 목요일 독서 모임에서 감사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 전 사고를 이야기하며 차주와 나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나도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하다고 했다. 헬멧도 깜빡했는데 아스팔트 바닥이나 바닥에서 솟아오른 방지턱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은 것도 감사했고, 내가 아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도 감사했다. 그리고 전부터 지면에 남기고 싶던 감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파트 11층에 사는데, 출근하려고 11층에서 승강기 단추를 눌렀다. 그런데 승강기는 11층을 지나쳤다. 나는 출근이 늦어질까 조바심이 날 뻔했지만,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최선을 믿었다. 이윽고 11층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데, 아래쪽에서 다급히 육중한 캐비닛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6층에서 문이 열리는 승강기. 한 젊은 사내가 급하게 승강기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1층에서 문이 열리자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내가 일찍 11층에서 승강기를 타고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면, 6층의 청년이 승강기가 1층을 갔다가 6층으로 올라오기까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내가 조금 기다려서 6층 청년이 승강기를 좀더 일찍 탈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음에는 반대로 퇴근하는데 1층에서 집에 가려고 승강기 단추를 눌렀다. 그러나 승강기는 쭉쭉 올라가더니 20층을 돌파했다. 승강기가 내려오길 한참 기다려야 했는데, 내가 기다리는 동안 현관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 한 명이 다가왔다. 덕분에 승강기를 같이 탈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기다려서 피곤한 아주머니가 덜 기다리고 곧바로 승강기에 탈 수 있어서 감사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최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의 기준을 나에게서 이웃과 공동체로 확장한다면 항상 기뻐하고(살전 5:16) 범사에 감사(살전 5:18)할 수 있다는 게 나눔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금요일, 한 사고와 이에 따른 도미노 작용 또는 나비 효과가 나를 시험했다. 업무 중에 칼로 양배추를 토막 내다가 엄지손가락을 토막 낼 뻔했다. 이제껏 일하다가 칼로 손가락을 찍은 것 중 가장 깊이 찍었다. 밴드로 감고, 휴지로 감고, 종이행주로 감아도 금방 빨갛게 젖어서 갓 도축한 송아지같이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서 밴드와 휴지와 종이행주를 여러 번 갈았다. 그 위로 비닐장갑을 꼈지만, 장갑에 피가 차서 넘쳤다. 일은 해야 했기에 손을 바쁘게 움직이니 사방에 피가 흩뿌려졌다.
결국 목사님이 와서 병원에 가라고 해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가정의학과 의원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비닐 장갑 엄지 부분에 찬 피를 보자 문자 그대로 두 손을 들고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어 “굴다리 쪽 KFC 건물 정형외과를 가보세요”라고 안내했다.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알려준 의원에 갔더니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 네댓 분이 깜짝 놀라서 일어나 나를 처치실로 데려갔다. 응급구조사 명찰을 찬 분이 응급 처치를 하는데, 이건 의원급이 아니라 병원급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근데 용산구에는 병원이 없다고.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진료비가 나온다며 정성스럽게 소독하고, 거즈도 갈고, 손톱과 살 사이가 벌어져 있던 다른 손 엄지도 처치해주셨다. 다른 병원으로 넘기는 거라고 하며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 감사했다.
업장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한 뒤 조기 퇴근하며 택시를 잡았다. 목사님께 안내받은 ‘신촌연세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님이 자꾸 물어봐서 마스크를 벗고 큰 소리로 두세 번 병원 이름을 얘기했는데, 한참을 가더니 기사님이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거기서라도 내려서 응급실을 갔어야 했나? 아무튼 기사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좀 맹한 분인 듯했다. 자꾸 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말을 잘못했다느니 이런 말을 구시렁거렸다. 아무튼 세브란스까지 간 택시비 정도만 결제하고 신촌연세병원 건너편 횡단보도 저 앞에서 세워줬다.. 여기서 내리라고 해서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가 5시 반쯤이었다.
신촌연세병원에서는 외래 진료는 5시에 끝났고, 응급실은 7시에 열리는데 한 시간 반 동안 기다릴 거냐고 물어봤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통증도 없겠다, 혈관을 건드려 출혈만 많았지, 생각보다 심각하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아니고, 이미 지쳐서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신촌역에서 전철을 타고 퇴근 시간에 맞춰 사람이 잼이 될 신도림역으로 가는데, 열차가 당산역에서 문을 열고 출발하지 않았다. 몇 분 기다리니 안내 방송이 나왔다. 누가 비상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열차 안을 다니며 비상 버튼 누른 사람을 찾고 있으니 누른 사람은 알려달라고 했다. 전철 비상 버튼이 눌린 걸 살다가 처음 겪었다. 이게 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들을 겪으며 한 건 한 건마다 이런 물음이 내게 닥쳐왔다. ‘이래도 감사할래?’ 나는 하나님의 최선을 믿는다고 물음에 맞섰다. 응급구조사의 선의를 받기도 했으니, 감사할 일은 분명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스트레스는 누적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일정에 가기 전에 다친 손가락을 보려고 동네 병원에 갔다. 동네 의원이지만 실력과 경력을 갖춘 곳이었고, 전날 용산 의원들에게 할 수 없다는 봉합술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유능하고 오랜 곳이기에, 병원 문 여는 시간에는 항상 노인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병원장님이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한 노인과 시비가 붙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진료를 받고 있는 원장실까지 불쑥 난입해 쉴 새 없이 뭐라고 떠들었다. 그가 “젊은 사람이 말이야!”라고 하자 나는 “아유 나이 드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라고 넉살 좋게 받아넘겼다. 그러자 그 노인은 아마 생전 처음 겪는 반응에 당황해서 할 말을 잃고 나가버렸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진료를 마치고 나가서 휴대폰을 작동시키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속도가 느려지며 버벅거렸고, 화면이 둘로 나뉘더니 화면 반이 가려졌다. 아무리 이것저것 눌러봐도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폭발한 나는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거친 단어를 내뱉었다. 나 말고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리고 휴대폰을 껐다 켜니 정상 작동했다.
그나마 이 정도로 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욕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풀어서 마음을 못 지켰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욕쟁이 남고생이었던 내가 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욕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 즉시 욕이 사라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당시 내 말의 전부가 욕이었기에 욕이 사라지자 그날부터 1년 반 동안 말을 못하고 지내야 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나눈 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최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마음을 지키며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의를 이루실 것을 믿고 내가 마음을, 기쁨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작은 나를 통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불의가 판치던 로마 시대에도, 억울함과 칼날의 고통에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살아낸 성도들이 있었다. 가룟 유다와 달리 돈의 회유에도 믿음의 정절을 지킨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있었다. 훨씬 더 이전부터도 옥살이와 타국에서의 포로 생활에서도 지킬 건 지키면서 남들을 섬긴 요셉과 다니엘이 있었다. 나 정도는 자랑할 것도 아니고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오히려 감사할 걸 찾으면 수두룩하게 나온다. 알지 않은가. 심지어 많은 빚을 지게 한 소송에서도, 이 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었기에 감사했던 걸.
물론 소송은 내가 불의하여 겪은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최선의 의를 이루실 것을 기대한다. 내가 하나님과 더 깊어진 것뿐만 아니라, 내가 소망하는 이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데에 이르기를. 이제 곧 성탄절인데,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 2:14)가 그 분에게도 임하기를. 하나님과 서로 기뻐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처한 불안의 현실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경험하기를.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의에 주리고 목말라 의의 근원인 하나님께 구하는 자는 복이 있어서 배부를 것이니.
그런데 집에 돌아와 밤중에 TV를 시청하다가 뉴스 속보가 뜬 걸 보자마자 끊었던 욕이 튀어나왔다. 하나님, 이건 세례 요한이 유대 지도자들에게 한 욕설과 같은 선상으로 봐주세요.
뇌를 거치지 않고 욕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한다. 비상계엄? 무슨 일로? 이유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여기가 북한인지 1970년대 대한민국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자신은 헌정 사상 유례없이 국회 결의를 25번이나 거부해놓고, 국회가 대통령이 임명한 비리 인사들을 건국 이후 유례없이 10명째 탄핵했다고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반대하면 무조건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으로 딱지를 붙였다. 독재를 하면서 입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연달아 튀어나왔다. 현실 인식이 일반인들과는 현저히 달랐다. 군‧검‧경을 장악했으니 패기를 부리는 것 같았다.
전부터 하던 비유를 이제는 글로 남겨야겠다. 고대 이스라엘에 자신이 나라를 망쳐놓고는, “왕이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합니다”라고 경고하여 나라를 살리려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나라 망치는 놈아”라고 한 아합 왕이 있었다. 나는 아합의 현실 인식이 이상했다. 나라가 왜 망해가는지 모르나? 어떻게 사람이 이러지? 그러다 자신의 몽니를 논리와 법리로 저지하면 반국가세력이라고 억지 부리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고 알았다. 아, 저런 사람이구나. 그리고 왕을 실질적으로 부리며 온갖 잡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우상들을 들여와 패악질을 부린 이세벨 왕비. 그리고 스스로 도사보다 뛰어나다고 자처하며, 대통령보다 강한 실질 권력을 부리며 주술로 국정을 운영케 한 김건희 영부인.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로 패망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나타난 독재자들의 결말을 보자. 이승만은 4‧19혁명과 국민들의 요구에 스스로 물러났다. 박정희는 10‧26사태 때 총탄에 암살당했다. 전두환은 6‧10민주항쟁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고 물러났다. 박근혜는 전국 규모의 지속된 촛불집회에 탄핵당했다. 윤석열-김건희는 사고 체계가 일반 국민의 사고와는 다르기에, 물러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것이다. 아합-이세벨도 그랬다. 윤-김의 결말도 하나님의 공의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글을 쓰며 돌아가는 상황을 접하고 있는데, 법에 따라 국회에서 계엄령 철회를 가결하여 3시간만에 계엄이 해제되었다. 어차피 해제될 계엄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침에 들은 라디오 뉴스에서는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계엄을 선포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의견을 들었다.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계엄령이 유지되는 동안 코인 가격은 폭락한다. 그동안 누군가가 코인을 대량 사들인다. 계엄이 해제되면 코인 가격은 다시 오른다. 여당도 모르게 기습적으로 발표한 계엄 시간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미 대통령이 나서서 영부인을 위한 주가조작을 한 정황들이 있다. 정말 수익을 내려고 온 국민을 한밤중에 불안에 떨게 한 대통령일까? 그렇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금식 50일차. 코피가 난다. 내게 기쁨의 해(禧年, Jubilee)는 오지 않고 황당무계한 대통령의 무리한 비상계엄 선언을 접했다. 나는 금식을 왜 해왔나?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맞다. 그런데 그동안 나라를 위해서는 기도를 외면해왔었다. 금식을 마치는 날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를 알려주신 듯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국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다시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해주셔서.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배는 조금씩 채우겠지만, 음식물로 얻은 힘으로 불의에 맞서고 공의를 이루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이제야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기도에 이어 이제는 행동한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 탄핵 집회에 나간다. 카메라에 현장 영상을 담고 중계한다. 하나님, 공의로운 하나님, 이 아합과 이세벨 정권을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의로 배부르게 하여 주옵소서.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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