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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마태복음 5:38-42 | 내가 파괴된 자리에 세워진 하나님의 최선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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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2.23.(월) + 2025.01.07.(화)
정리: 2025.01.07.(화) + 2025.01.08.(수)


마태복음 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개역개정)

 

각주

38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은 고대 근동의 보편적 복수법의 일부이다. 이스라엘과 여타 문명권에서 이 원칙은 법정에서 시행되었으며 합법적인 보복을 뜻했다(『IVP 성경 배경 주석』).

39절
고대 세계에서 오른편 뺨을 때리는 것은 가장 심한 모독에 속했다(『IVP 성경 배경 주석』).

40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밤에는 이불 역할을 하는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겉옷은 법제도에 의해서 빼앗을 수 없도록 보호받는 의복이었다(『IVP 성경 배경 주석』).

41절
이 표현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부과되는 노동력 징발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에게 부당한 노동력 징발에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이야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었을 것이다(『IVP 성경 배경 주석』).

 

나의 묵상: 내가 파괴된 자리에 세워진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이끄신다고 믿지만, 이 믿음을 시험하는 상황은 하루에도 여러 번 닥쳐온다. 이게 과연 최선인가, 하는 의문을 넘어 이건 최악이다 싶은 일들이.

나는 본성적으로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그래도 성령의 열매(갈 5:22-23)를 맺어가며 많이 온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피로하고 지치면 스트레스 상황에 평상시 몸 상태일 때보다 더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하려고 한다. 그나마 이런 나를 알기에 남에게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참는데, 그 때문에 내가 썩어 문드러진다.

마지막 근무일인 지난 금요일(2024.12.20.)에는 내가 고발한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 수사관과 통화하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20분 가까이 고성을 쏟아놓은 결과는 서로가 서로의 표현을 오해한,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었다.

어쨌거나 8개월 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폭발했는지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래도 소화해야 할 일정들과 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쳤다. 내가 쉬겠다며 남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었다. 비상계엄이 발령된 뒤로는 일상이 망가져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할 일들 절반 가량은 몸이 지쳐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녀온 토요일 대학 동역자 모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후배가 내 사건에 대해 조언해줬다. 10월에 버스에서 난데없이 내게 욕설을 퍼부은 노인이 있어서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다. 수사 결과로는 CCTV와 교통 카드 조회를 통하고도 이 사람이 누군지 찾을 수 없다는 거였다. 노인이 쓴 교통 카드는 일회용이었기 때문이다. 수사관은 전날 통화에서,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그 노인이 기초 생활 수급자 같다고 했는데, 수급자를 날마다 상대하는 공무원 후배도 잃을 게 없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이 사람에게 얻을 게 없다고 말했다. 벌금형을 받아도 납부를 거부하고 수형 시설에서 살다 나오면 그만이고, 내가 민사 소송을 해서 승소하고 압류를 신청해도, 기초수급비는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시비에 걸렸을 때 내 재정 상태를 어느 정도 해결하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거라는 ‘원영적 사고’를 내려놓기로 했다. 복수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그날 밤, 될 줄 알았던 재정 지원 공모 신청에서 떨어졌다. 일을 그만두며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운 길을 준비하도록 재정 기반을 마련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러고 보니 금요일에도 이 날 일어나기를 바라는 세 가지 기도를 했지만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해주시면 그걸 하라는 답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결국 오리무중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몸의 상태와 이성,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장차 할 것을 정해야 한다.

또 한편, 내년부터 교회 청년부가 둘로 나뉘는데 어제(2024.12.22.)는 2청년부만의 임시 총회를 했다. 나는 2청년부 사전 모임부터 꾸준히 참석하며 내년 활동에의 기대를 키웠다. 어제 모임에서는 2청년부 회장 선출 방식에서 담당 교역자님과 부정 집사님은 지명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2청년부의 일은 청년 모두의 결정으로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며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인원이 적기에 거수 투표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모든 투표는 무기명 투표를 원칙으로 한다는 기존 총회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가 투표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공유했다. 이렇게 내가 주장하고 일을 다 했는데도, 선거 결과는 내가 아니라 다른 청년이 회장이 되었다. 3분의 2를 득표해야 당선되는 1차 투표에서와, 다득표자 당선 방식의 2차 투표까지 갔는데도, 1‧2차 투표 모두 내가 단 1표차로 낙선했다. 심지어 투표 전에 교역자 분이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음에도 나를 추천했지만(그래서 나는 그분의 의사를 ‘추천’이 아니라‘참고 의견’이라고 정정했다), 당선된 건 2청년부 연령 제한 논의가 길어져 오늘 겨우 처음 참석한 막내 청년이 추천한 다른 형제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누가 나를 안 찍었는지 생각했지만, 그래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 싶어 관두었다. 설마 ‘보복’이라도 할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연합한 가운데 모두의 결정으로 나온 결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기로 하자고 한 건 나였다.

낙선한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거 중고등부 시절에도 선배들이 나를 밀었지만, 그날 뜬금없이 추천받은 다른 친구가 회장이 된 기억이 생각났다. 그리고 대학 선교단체에서도 소그룹 리더 면접에서 한 차례 떨어져 3-4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 납득을 했었다. 그 당시의 내가 회장이나 리더를 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에 어려움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나는 애써 내가 모를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며 앞으로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담당 교역자까지 나서서 나를 원한다고 말했는데도 회원들이 나를 원하지 않기에, 내가 구상한 것들을 굳이 펼치며 수고하고 싶지 않다는 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카페에 앉아 부장 집사님과 회장 당선인에게 내게 있는 2청년부의 비전을 열렬히 공유하고 있었다. 아마 피로와 몸살 때문인 듯하다. 어쩌면 2청년부에서 나는 회광반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에 수업을 다녀왔고, 오늘(2024.12.23.)은 예약한 병원을 가는데 또 일이 꼬였다. 송내역에서 병원을 가려면 타야 하는 버스는 번호가 둘이었다. 둘 다 배차 간격이 어마어마했다. 그중 한 대를 놓치고, 다른 한 대를 타려고 정류장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버스 앞문으로 향했다. 버스 기사가 내게 줄을 서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처음이라서, 그리고 날이 추워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줄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어쨌든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뜬 지도 정보가 자꾸 경로를 수정했다. 버스가 계속 지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던 것이다. 한참을 가다가 인천1호선의 한 전철역 즈음에 다다를 때쯤 몸을 일으켜 버스 기사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번호는 같지만 방향이 다른 버스라서, 송내역에서 탑승 전에 확인하고 타야 한다고 했다. 답변을 듣고 하차하여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허탈했지만 전철을 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성탄절 당일에는 칸타타 내레이션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 상태가 핍절했다. 아침 일찍 교회 본당에서 칸타타 연습을 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청년부 찬양 인도자와 마주쳤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나는 성탄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말 시키지 마”였다. 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나와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을 들어서 그나마 타격이 덜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뻐하고 재림을 기대하게 하는 내레이션을 하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내레이션을 두고 기도를 부탁할 때 내가 자만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였다면, 크리스마스 당일 이때는 내 상한 마음이 내레이션에 배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본 무대에서 실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다행히 들으신 분들이 다들 좋아해 주셨다.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기를 바란다. 그런데 칸타타 내내 그 찬양 인도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건데, 단순히 ‘성격 이상하다’ 정도로 볼 문제는 아니었다. ‘상처가 많아서’로 이해할 문제도 아니었다. 나르시시스트 전문가 윤서람 작가의 분석을 다시 접하고야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다른 나르시시스트와 살아왔으면서도 그동안 이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이런 유형의, 특히 여성 나르시시스트를 처음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내가 겪어온 남성 나르시시스트들은 전부 자신의 빈약한 자아를 허세와 과장으로 부풀리며 자기 자랑에 열중하는 반면, 이 여성 나르시시스트는 겸손을 표방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는 맞받아치기보다 겉으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울어버리거나, 숨거나 도망가는 편을 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르시시스트의 교집합을 겹쳐보면 공통분모가 모인다. 윤서람 작가의 『그 사람은 왜 사과하지 않을까』(봄에)에서 정리한 내용을 요약해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으며, 자기 행동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오히려 상대방을 죄인으로 몰고 가며, 상대방이 나쁜 의도로 자신을 괴롭힌다고 하고, 심지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어쩔 수 없었다거나 미화하기도 한다. 제 3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나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교회 원로께 “교회에 자신을 질투하는 세력이 있어요”라고 누구도 동의하지 못할 주장을 확신하고 말하기도 했다. 절대적으로 옳아야 하는 자신의 사고 회로로는 이러한 결론이 아니면 도저히 답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리라.

위 내용은 특정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나르시시스트라는 성격 유형을 이해하여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남긴다.

아무튼 성탄절을 지나고 나니 과로와 스트레스 증상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이번에는 독감에 걸려버렸다. 그리고 독감도 가라앉은 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 되는 날(2025.01.07.). 연말연시에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 한편에는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상상이 솟아오르지만, 이 또한 허망한 것이라는 걸 알기에 꾹꾹 눌러 둔다. 심판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한다. 하나님의 최선을 믿는다.

연말연시를 보내며 2청년부 회장을 겪어보니, 이 형제가 회장이기에 감사하고, 내가 회장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MBTI 성격 유형이 INFP인 나라면 끌어올린 감정으로 시야가 좁아져 독단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는 일을, ESTP인 이 형제는 이성으로 생각해보고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할 줄 안다. 그래서 위기를 넘기고 좋은 방향을 도출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이끄셨다는 걸 열매를 보고야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점점 나에게 치유 받지 못한 서러움들이 드러나고 있다.

본문의 교훈으로 돌아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은 것을 넘어 모두에게 선으로 대할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걸 찾아본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내 호의를 찬양 인도자는 악으로 갚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한숨을 쉬며 원망하지 않기로 한다. 나를 돌아볼 때, 내가 악을 행해 손해를 본 사람이 오히려 내게 선을 행했을 때 나는 다시 악으로 갚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내게 최선으로 대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나. 성탄절에 노래한 대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피를 나는 삶에서 얼마나 부끄럽게 하고 모독해왔나. 주께서 거룩하게 구별하고 정결케 하신 백성으로의 삶 대신 세상에서도 고개를 저을 악을 행하기에 발이 빠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

주께서 내게 주시는 멍에와 십자가를 기쁘게 받게 하소서. 주께서는 억지로 주시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나니, 이를 신뢰하고 십자가의 멍에를 거절치 않으며 주님 가신 길 따라가게 하소서. 악을 선으로 갚는 길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임을 유념하게 하소서. 내 뜻과 바람이 선이 아니라 주의 뜻이 선함을 기억하여 실망치 않겠습니다. 내 삶이 주의 뜻과 열망을 이루는 걸음이 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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