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2.09.(월)(기준일), 2024.12.10.(화), 2024.12.24(화)
정리: 2024.12.09.(월), 2024.12.10.(화), 2024.12.24(화)
마태복음 5:8-9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
나의 묵상: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을 이루는 자의 복
나부터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데,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 세력 및 부역자들의 여전한 권력욕과 거짓말, 변명, 발뺌, 적반하장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국가의 화평을 깨트리면서도 잘못한 것 없다는 태도에 선지자들의 심경을 느끼며, 다윗이 저주의 시를 쓴 의분을 이해한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반대로 마음이 불결하고 불안과 공포를 몰고 오는 자에게는 화가 있지 않을까.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최종 심판 전에 심판의 계획을 보이시고, 경고의 심판을 내리신다. 돌이킬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차례의 경고와 징계에도 과거 모세를 대적한 파라오처럼 마음이 완고하고 완악한 이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최종 심판을 자초한다.
이 땅에 화평을 일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대의 현실에서는 추운 거리와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내 몸을 끌어 온기를 더하러 나가야 한다. 그런데 대의에만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은 이들이 망가지는 걸 많이 봐온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본다. 최근 한 주 동안 계엄 정국에 반응한다며 개인 경건이 무너졌었고, 내게 화평이 없었다.
계엄 사태 다음날인 지난주 목요일에는 일하는 곳 근처 대학에서 학생들의 시국 선언이 있었다. 원래 이 날로 예정된 시국 선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전날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했다. 영부인의 논문 표절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대학이라 시국선언문에는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했지만,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로 시국선언문의 내용은 계엄 관련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시국 선언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고, 모이기만 해도 공권력이 영장 없이 대학생들을 체포했을 것이다. 계엄이 해제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대학생들의 시국 선언에 감동한 목사님이자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학생들에게 무료로 추가 재료를 넣어주는 행사를 당일부터 방학 전까지 시행했다. 취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일하는 사람은 나라는 거였다. 학생들이 올 때마다 행사를 설명했고, 재료를 더하여 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주로 주문하는 메뉴 구성도 바뀌게 되었다. 입과, 신경과, 손이 더 많이 가고 에너지를 더 많이 들여야 했다.
게다가 금요일에는 혼자 일해야 했다. 내가 전날 온수통을 싱크대에 넣으려다 온수통의 수도꼭지를 부러트렸는데, 목사장님이 수리하는 걸 알아보겠다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행사 포스터와 업장 문 앞에 붙은 대통령 탄핵 요구 피켓을 부지런히 사진으로 찍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등에 올렸다. 대학생들만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행사 소식이 올라왔고, 이에 대학생들은 역설적 농담인 ‘먹어서 혼내주자’를 하러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매상도 올려주고 추가 재료를 무료로 넣은 식사를 하겠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러 온 학생들이 마감 시간까지 애굽 군대 위로 홍해가 덮치듯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금식도 끝났는데 식사할 시간도 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재료를 조합하고, 학생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고, 금요일이라서 커다란 밥솥들을 씻는 등 한 주의 정리까지 해야 했다. 결국 몸이 너무 지쳐서 탈진했고, 집에서 할 계획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귀가하자마자 쓰러져 취침했다.
다음날인 토요일은 시 낭송 대회 본선이 있어서 일찍 움직여야 했는데, 아침부터 몸이 무거워 움직이질 않았다. 오랜 시도 끝에 몸을 굴려 나왔고,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아서 신경도 예민해져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대회를 위해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무던 애썼다.
하지만 대회장에 도착하자 목사장님에게 온수통이 사라졌다고 연락이 왔다. 매장 안에 혼잡해서 잠깐 밖에다 놔뒀는데, 내가 퇴근할 때 들여다 놓지 않아서 도둑맞은 것이다. 나는 전날 그것만 빼고 완벽하게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퇴근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신경을 쓸 여력 없이 그냥 나온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목사장님의 짜증을 받아내야 했다. 경찰 신고, CCTV 확인, 온수통 대여 등 할 일이 늘었다고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과드리고, 온수통을 찾을 방안을 나름대로 전달해드렸다.
대회장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맨 아래 지하 2층으로 가니 접수처가 있기에 대회 참가자 확인을 받고,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2층으로 가라고 했다. 뒤편에 승강기가 있어서 저걸 타고 2층으로 가면 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2층으로 갔는데 대회 관련된 건 아무것도 없고, 카페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카페에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했다. 뒤에서 대회 참가자 아주머니가 따라와 나와 함께 헤맸다. 그분도 접수처에서 2층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고 온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지하 2층 접수처로 갔다. 거기서 접수처 직원보다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남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그분이 나에게 사과했지만 정작 접수처 여직원은 우리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당황한 건지 뭘 모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매장에서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나중에 다시 접수처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그 여직원은 사내 연애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직원과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 여전히 길을 잘못 알려준 것에 대한 사과나 헤명, 심지어 변명도 없었다. 부아가 치밀 일이다. 어쨌거나 그 ‘2층’은 건물 2층이 아니라 건물 내 공연장 2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연장 2층은 건물 지하 1층에 있었다.
공연장 2층에서 대기하다가 내 차례가 다가와 다른 여직원이 와서 무대 대기실로 안내하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걷다가 내 뒤꿈치를 밟았다. 그녀는 곧바로 사과했지만 나는 오늘 왜 이러나 싶어 한숨을 쉬며 양어깨의 힘을 빼고 늘어트렸다.
그밖에도 공연장, 대기실 등등 대회장 곳곳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각 지역 시 낭송 협회 회원들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었다. 치마에 철심이 들어 부풀린 거대하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분들이 많았고, 드레스를 입은 분들도 꽤 있었다. 이분들이 옷으로 나를 스친 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어깨 등 몸으로 치는 경우가 내 신경을 툭툭 찔렀다. 압권은 수상을 대기하려고 모인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가뜩이나 붐비는 공간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예 손을 내 등에 대고 힘을 주어 옆으로 밀면서 전진했다. 가는 길에 내가 있었던 모양인데, 시를 읽는다는 분이 조금 비켜달라는 말 한마디 안 했다. 이젠 짜증이라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태와 상황에서도 시 낭송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몸이 따라줄 리가 없었다. 매일 같이 연습한 대로만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대회에서는 평소 실력보다 못 나온다고 해도 몇 달간 연습한 것 중 가장 망쳤다. 객석에 나의 나타샤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에 몰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유튜브 생중계로 확인하니 생각한 것보다는 망치지 않아서 나름대로 기대를 품었는데, 결국은 14명이 받는 장려상 수상자를 부를 때 내 이름이 나왔다. 내 이름이 들리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탄식했다. 하나님께서 대상 상금으로 내 재정 위기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시길 바랐는데.
상을 받고 건물 1층으로 올라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았는데, 그 옆쪽에 서 있던 성탄 트리 5개 정도가 전부 내게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오늘은 뭔가 악재가 계속 일어난다.
부상으로 받은 커다란 선물을 들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다. 부상의 부피가 크고 손으로 편하게 잡을 각이 안 나와서 들고 다니기 불편했고 팔이 아팠다. 그리고 날이 생각보다 추웠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는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다. 과연 내가 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행인지 문이 열리고 맨 앞쪽에 있던 승객이 내렸다. 그런데 그 젊은 여성 승객이 몸을 날려 뛰어내리면서 내게 어깨를 부딪쳐왔다. 프로레슬링으로 치자면 숄더 태클 또는 숄더 차지란 기술을 날린 셈이었다. 하차한 승객은 사과했지만, 내 입에서는 거의 나만 들릴 정도로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다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녀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들었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는 거의 1미터짜리 부상을 들고 있느라 손잡이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버스가 출발하고, 돌고, 멈출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부딪혔다. 겨우 전철역이 있는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려는데, 뒷문으로 내리는데도 승차하려는 사람들이 당연하단 듯이 문이 열리자마자 마구 올라왔다. 나는 “내리면 타세요”를 반복해서 부탁하며 겨우 하차했다.
역시나 당연하게도 전철은 내가 도착하니 문을 닫았다. 천만다행으로 탄 전철에서도 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앉지 못하고, 먼 거리를 서서 탔다. 버스와 전철 안에 사람이 많을 때는 선물을 바닥이나 어디에 둘 수도 없었다.
그래도 생각의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대며 감사한 점을 찾아 움켜잡으려 했다. 컨디션 난조로 최악의 낭송을 마치고 로비로 나오며, 속으로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기를 기도했다. 곧바로 한 아주머니 참가자가 다가와서 잘 들었다고 인사했다. 뒤이어 온 다른 분도.
그리고 391명의 성인부 참가자들 중 1차 온라인, 2차 오프라인 예선 등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30명 모두가 입선 자격을 얻은 수상자들이었다. 하긴 제주도에서까지 온 참가자도 있는데, 아무것도 들려 보내지 않으면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이나 마음이 어려울 것이다.
시상하시는 분이 다른 수상자들에게는 아무 말 없이 악수만 건네거나 “축하합니다” 정도의 인사를 한 반면, 나에게는 “잘하셨습니다”라고 해줬다. 나는 “아닙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분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라고 한마디를 더했다. 속으로 나는 ‘그러면 대상을 주시지’하고 아쉬워했지만, 입으로는 “내년에 뵙겠습니다”라고 약조했다.
장려상 수상자들에게는 다음 대회에도 참가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높은 단계의 수상자들은 전문 낭송인 자격을 받아서 차기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더 이상 ‘일반인’ 참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째 상을 받았지만 애매한 상이 아니라서 다음에도 참가 자격을 유지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내년엔 대상이다.
앞서 말한 눈앞에서 문이 닫힌 전철은, 다행히 다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집 근처 역에서, 택시 승강장에서 흡연하는 노인에게 화내지 않고 점잖게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꺼달라 부탁할 수 있었다. 노인은 기분 나빠했지만, 악을 악으로 받아치지 않고 선으로 품을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 다음날 예배를 마치고는 드디어 내게 담을 쌓았던 찬양 인도자와 대화할 수 있었다. 둘 다 눈물을 흘렸는데, 이유는 같았지만 각자 흘렸다. 찬양 인도자는 과거의 사건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프다고 하며 울었고, 나는 그 기간 동안 아팠을 것에 공감하며 눈물이 났다. 하지만 오가는 말 속에 서로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 위주로 생각했고, 내가 가해자고 자신은 피해자라는 틀을 세우고 빠져나오지 않았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할 때 자신은 나를 최대한 변호해주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안 좋게 얘기해 이간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신을 이단이라며 예배당 앞에서 피켓 들고 1인 시위 같은 걸 할까 봐 두려웠다고 한다. 더하여 앞으로는 누구에게든 이간질을 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이 자신 위주로 결론짓는 사고 틀과 대화 없이 혼자 하는 상상 때문에 청년부에서 10명 가까이 그녀와 사이가 틀어진 걸, 그녀는 곧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회에서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석해왔다. 그녀의 말을 듣고 충격과 피로로 어안이 벙벙한 내가 겨우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할 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내가 아는 사실 및 진실과 차이가 있지만, 차분히 생각하며 화가 나기보다 그 사람이 안쓰러웠다. 생각보다 연약한 사람이구나. 계속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귀를 막고 소리치고 있었구나.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자신과 사람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은 어두워질 텐데.
쏟아낸 말 속에서, 그녀는 2년 가까이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외면한 거라고 했다. 나를 보면 괴로워지니까. 그런데 애당초 그 사람이 말하는 사건 당시에도, 정작 나와 대화한 적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야기를 하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해명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간질을 한 게 아니라, 청년부 전 회장과 현 회장, 부회장, 반주자 및 다른 청년들과 충돌이 생긴 건, 나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이들 각자와 일으킨 것이었다. 나는 나중에 전해 들었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과 자꾸만 문제가 발생하고 담 쌓은 관계들이 늘어난다면, 그건 자신을 질투하고(?) 괴롭힌다는 사람들이 문제일까, 아니면 자신의 문제일까. 둘 다 문제일 수 있지만,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처음부터 단정하여 스스로 돌아보지 않으려는 것부터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신비주의나 신사도주의 의혹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어른들에게서 나온 것이었고, 나는 어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그 사람들 두둔해왔다. 아니라고만, 억울하다고만 하지 말고 교역자와 이야기를 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이렇게 상식적인 해법도, 정신적‧심리적으로 연약하고 위축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녀 내면에서부터 화평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화평은 아직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나중에라도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힘들어하는 욥에게 날카로운 사실로 욥을 더 힘들게 했던 엘리바스처럼은 되지 않으려 당장은 침묵을 택한다. 욥과 엘리바스에게처럼, 언젠가 주의 때에 주께서 친히 말씀해주시고 알게 하시며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그래서 욥이 엘리바스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했듯, 우리에게도 화해와 화평 주시기를. 우선은 내게도 화평이 없으니, 내게 화평 주시기를.
예배 후 학원에서 수업까지 받으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필 이날 계엄 문건이 공개되었고, k는 이를 방송에서 다뤄야 할 강한 필요를 느꼈다. 밤에 귀가하여 방송 준비를 하고, 23시 45분에 생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공지가 늦은 기습 방송이고, 내일이 월요일인 야간 방송이라 시청자 수는 적었지만, 몇몇 분들이 3시간 동안 끝까지 함께했다. 게다가 만원이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후원도 받았다. 쓰러져 죽을 각오로 방송을 시작했지만, 방송을 하며 놀라운 분석과 통찰이 쏟아져 나오며 오히려 점점 힘을 얻어 살아났다. 심지어 은혜로웠다.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한 자가 세상을 청결하게 하고 화평하게 한다. 세상의 필요에 주께서 나를 타오르게 하고, 그 불꽃은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외치며 사람들의 마음을 청결케 한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여.
그리고 방송을 하며 알았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각자에 맞는 일이 있도록 다르게 창조하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나는 방송을 하고 글을 쓰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데에 맞게 조성되었다. 음식을 만들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유익하고 훌륭한 일이지만, 나에게 꼭 맞는 일은 아니다. 전에도 통계업체에 들어갔다가 한 달만에 나오며, 하나님께서 청년‧대학 사역으로 돌아갔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이렇게 좌충우돌 기질과 비전을 알아가며, 하나님 뜻에 맞는 길을 가게 되는 듯하다. 내가 생각하며 기도하는 그분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가면 좋겠다. 그러면서 늘 마음을 청결하게 하며 화평을 이루는 자로서.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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