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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11 |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내가 매일 기쁘게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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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6.29.(토)
정리: 2024.06.30.(일)


사도행전 1:1-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내가 매일 기쁘게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2월호는 열왕기하를 마치고 사도행전을 시작한다. 전개가 뜬금없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지금의 내 처지에 사도행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최선으로 이끄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주신다.

어제 도움을 받아 6월에 물어야 할 합의금을 전송하고, 오늘 아침 이단 상담 아카데미에 가려고 준비하는데 결국 어머니의 스무고개에 넘어갔다. 무슨 사건인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을 못하다가 정확한 ‘찍기’에 찍힌 것이다. 웬만해서는 어머니가 맞추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는데,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생각과 입술을 주장하신 것 같았다.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울기까지 하며 엄청난 잔소리를 했을 텐데, 어젯밤 내게 기도하고 있다고, 회개하고 사과하라고 하는 때부터 느낀 차분함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죄송하고 감사하게도 재정을 알아보려고 했다. 다른 분들에게 손 벌리지 말라면서. 그리고 밤에 따로 와서는 더 자세히 듣고, 오히려 원고가 너무 불쌍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기도 없이 이단 상담 아카데미를 마치고 원장님께 말할 수 있는 부분까지 말씀드렸다. 진작 얘기했다면 변호사도 소개해주고 할 텐데, 내가 다 마무리 지어놓고 재정만 요청하는 격이라며 씁쓸해하셨다.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는 하셨는데, 원장님을 실망시켜드려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부터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내가 사울 왕이 된 것 같았다. 사울이 미쳐가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면 증상이 가라앉는 것처럼, 날마다 가슴이 답답했다가 성경을 묵상하면 마음이 풀리고 평안과 힘을 되찾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음악을 재생하여 이어폰을 꽂은 채 버스에서 내려 예배당으로 향하는데, 그저께 묵상하며 부른 <여호와께 돌아가자(Love Never Fails)>가 재생된다. 예배당에 도착해서는 <주의 사랑을 입어(부제: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이 나온다(세상에, 하루가 지나 지금 이 부분을 컴퓨터로 옮겨 적는 순간에도 유튜브에서 이 곡이 나온다). 가사를 검색해서 따라 불렀다.

 

 

 

수많은 괴롬과 슬픔 가운데 놓인
보잘것없는 나를
갈 길을 찾지 못해 서성거리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이번 소송을 겪으며 인식한 나 자신이, 솔로몬의 고백처럼, 어제 묵상에서 적은 것처럼, 드나들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나의 어여쁜 자야 나와 함께 가자
너의 근심은 모두 이제 내려놓고
나의 평안을 네게 모두 주었노라
그 무엇도 비길 수 없네

 

묵상을 하러 예배당 방 한 켠에 자리잡기 직전에 들른 화장실 소변기 앞에도 캘리그래피로 적힌 아가 2장 10절(“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이 붙어있었다. 속으로 기도하며 물었다. 내가 주의 사랑 받는 자일까요? 나는 이미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못난 종놈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상처와 부담과 실망을 주는 골치덩어리다.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손을 대는 것마다 망가지는 사고뭉치다. 물론 <나의 하나님>이란 곡에서는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의 사랑을 입어>는 “주의 사랑을 입어 살아가네 / 주의 평안이 내게 있네”라는 후렴구를 반복한다. 내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서 묵상을 기록하고,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하는 건, 주의 사랑을 입어 살아가는 증거다. 주의 평안이 내게 있다. 나는 다윗의 연주를 들은 사울처럼 안돈되었다.

그리고 마주한 사도행전 1장. 방 안에 홀로 있어서 소리내어 읽었다. 그러다 저 유명한 8절을 읽을 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읽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눈물이 눈에서 터지며 입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을 반복했다.

눈물을 흘리고 구절을 반복하며 베드로가 떠올랐다. 그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그분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저주한 실패자였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시고 어떻게 되었는가. 이탈자요 도망자요 숨어 살던 그가 사람들 앞에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유대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던 그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은과 금은 없어도(행 3:6),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베드로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 회복하시고 일으키사 쓰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게도 그리하실 거라는 소망에 감사하며 울었다. 지금의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이번 상황이 힘겨워 운 적이 없었는데, 감격으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성령님을 구한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실제적이며 강하신 분.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눅 11:13).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가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눅 11:10).

내가 기도하는 그분도 기도하며 성령을 구하기를 소망한다. 성령께서 그분이 처한 현실을 이겨낼 힘과 돌파할 지혜를 주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려주실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으니(고전 12:3), 오직 성령이 임하셔서 그분께 그리스도를 증거하실 것이다.

오랜만에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깊이 만지시니, 앞으로는 사울처럼 오락가락하지 않기를. 두려움과 불안보다,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내기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느 8:10)이니,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기뻐한 하박국(합 3:17-19)처럼 이 힘으로 이겨내기를.

 물론 지난번에 나는 쉬지 말고 기도(살전 5:17)하고 범사에 감사(살전 5:18)하는 것은 배웠지만, 항상 기뻐할(살전 5:16) 줄은 모른다고 적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이화여대 IVF 누나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능을 다시 준비하며 들어간 재수학원. 당연히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유독 항상 생기 있게 웃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 누나는 그 친구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렇게 그 누나는 그 친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이 이야기가 떠오르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스스로가 가증스러워도, 하나님을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매일 기쁘게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묵상을 마치고 교회 청년들과 짧게 교제한 뒤, 집으로 오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 없이 길을 걸으며 <내가 매일 기쁘게>를 불렀다. 평소 찬송가를 즐겨 부르진 않지만, 묵상한 내용과 가사가 깊이 있기 연결되며 내 고백이 되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 하는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입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 하는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세상 모든 정욕과 나의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그리고 손으로 적은 묵상을 컴퓨터로 옮겨 적기를 마치려는 지금, 유튜브에서는 또 <주의 사랑을 입어>를 재생해준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감지하고 깨달으며, 감사한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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