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01.(월)
정리: 2024.07.01.-02.(월-화)
사도행전 1:12-26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삼위가 하나이신 하나님처럼
누가는 2층에 모인 열한 사도의 이름을 모두 기록한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다시 모이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같이 따르지 못했었고, 도망갔었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도 자기 길로 갔었다. 그러나 주께서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셨다. 제자들을 다시 찾아와 어업으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로의 부르심을 회복하시고, 양들을 맡기신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본 사도들은 다시 흩어지지 않고 모였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500명 앞에 나타나신 적이 있었으나, 모인 사람들은 120명이었다. 그렇지만 배신했던 제자들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몰랐던 예수의 아우들이 떠나지 않고 모였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던 여인들은 물론이고.
그런데 사도들 중에 모이지 않은 이가 있었다. 바로 가룟 유다. 그는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따르다가 후회했으나, 돌아오지 않고 돌아올 수 없는 도망을 쳤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떠나서 자신이 버린 직분을 다른 사람이 취하고, 베드로는 성경을 강론하며 가룟 유다를 입에 올린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에 관해 성경이 응한 것이라고 해설한다. 어떻게 그에게 이런 통찰이 생긴 걸까? 부활하신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성경을 가르치시자 그 두 제자가 이전엔 몰랐던 성경을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졌듯이(눅 24:13-35. NIV는 “our hearts burning”으로 표현).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깨달음과 감동이었다. 성경의 제 1 저자이신 성령께서 성경을 알려 주셔야 예수께서 주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마음으로 믿어 고백할 수 있고(딤후 3:16, 요 20:31, 고전 12:3, 롬 10;10), 성경이 이해되며,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마음이 불타오를 수 있다. 예수께서도 베드로가 당신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을 때,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실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둘 다 예수님의 제자였고, 배신자였다. 차이가 있다면 가룟 유다는 스스로의 죄책감에 자멸을 택했고,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자격이 없다 여기고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살아있음으로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회복의 때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니,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그러면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증언할 것이다(시 118:17).
2층에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다. 서로 누가 크냐 다퉜고(막 9:34, 눅 9:6, 눅 22:24), 정치적 입장도 다르고, 성별도 나이도 다른 이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구했다. 도망자, 패배자, 낙심자였던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기대와 소망과 간절함으로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베드로와 모인 이들은, 어떠한 사건을 설명하고 행동을 결정하는데 성경을 근거로 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감정에 좋은 대로, 두려운 대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성령께서 밝혀주신 성경의 지혜대로 행한다.
나는 이제껏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요 21:18) 이제는 주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이 길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란 것도. 그래서 성경을 읽으며 성령을 구한다. 나아가 쉬지 말고 기도하여(살전 5:17) 성령의 충만을 받기를. 비록 나와 내가 기도하는 분이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각자 있는 자리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기를. 바울이 기록한 대로, 몸은 떨어져 있어도 영으로 함께하기를(골 2:5). 이 모든 소망을, 나뉜 둘을 하나로 만드신(엡 2:1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한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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