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7.31.(수)
정리: 2020.10.22.(목)
사도행전 14:1-7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선동해서, 믿는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하였다. 두 사도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더러는 유대 사람의 편을 들고, 더러는 사도의 편을 들었다. 그런데 이방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했다.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하였다. 그들은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하였다. (새번역)
나의 묵상: 모두에게 역설적으로
그리스도 때와 같은 양상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였고,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이적과 기사와 말씀에 힘이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과 그 지도자들이 선동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은 물론 이방인들의 마음도 굴복시켰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합작이었고,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의 죽음에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또한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피 값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하게 미친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날 두 사도는 죽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전하면서 받는 고난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우리에게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 스데반 순교 직후 복음이 다른 지방으로 퍼지고 특히 이방인에게도 전해졌으며, 본문에서도 죽음을 피해 달아난 곳에서 복음이 전파되었다. 아브라함도 떠났고, 이삭도 빼앗기고 쫓겨났고, 야곱도 도망갔으며, 요셉은 팔려가 갇혔고 누명까지 썼다. 모세와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망’과 ‘축출’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의도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성경 인물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에게 은혜 베푸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 지금의 이 도망자 신세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성경의 인물들은 가는 곳마다 복이 되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증거했고, 복음을 말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오직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겨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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