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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사도행전 14:19-28 |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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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9.08.02.(금)
정리: 2020.10.25.(일)

 

사도행전 14:19-28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맡겼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비시디아 지방을 거쳐서 밤빌리아 지방에 이르렀다.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향하여 갔다. 이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이제 그들은 그 일을 다 이루었다. 그 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모으고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냈다. (새번역)

 

나의 묵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바울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그의 “몸에 나타”났다(고후 4:10). 죽음을 넘기고 고통을 지나 영생의 증거가 되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는 제자들 앞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그는 사역을 접거나, 하나님이나 대적을 원망하거나, 낙담하여 주저앉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는 자신의 마음은 물론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였을까. 환난에도 이 믿음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의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스스로와 제자들과 모두에게 증거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려면, 예수의 죽음을 짊어져야 한다. 말에만 아니라, 소위 영혼에만 아니라 몸에, 삶에 나타나려면 몸에, 삶에 짊어져야 한다.

이제는 재정에 대해 죽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바쳤다. 엄청나게 고상한 사역에 쏟은 것이 아니다. 의심스럽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주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동시에 하나님을 묵상했다.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것을 주시고 아들을 주셨다. 그런데 나는, 인간은 하나님께 사욕을 위해 간구하며, 때로 거짓으로 포장한다. 그렇게 하면 더 잘 받아낼 수 있을까 하여. 그리고 받은 삶을 허비하곤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우가 있다. 어찌하였건 이 사건은 간만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묵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 본문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처절하게 사는 게 본분이었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들어간 곳에서 일 몇 번 못해보고 나오고, 재정도 없다. 그 사람의 재정 압박을 내가 짊어졌다. 건강도 망가지고, 다른 이들이 행복하게 가정‧직장‧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부러웠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시 새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이거구나. 이거였지. 이것뿐이지. 이대로 죽고 살자.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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