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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사도행전 7:1-16 | 스데반과 요셉, 그리고 나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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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의 스데반

작성: 2024.07.06.(토)
정리: 2024.07.07.(일)


사도행전 7:1-16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스데반과 요셉, 그리고 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6:3)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이자 “은혜와 권능이 충만”(6:8)한 헬라(그리스)계 유대인 스데반은, 예수를 믿지 않는 헬라계 유대인들의 계략으로 예수님처럼 유대인의 최고 회의‧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 종교 재판을 받는다.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라고 새벽에 기습적으로 판결하고 처형권이 없어 로마가 임명한 유대 지방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간 그 산헤드린 공회였다. 스데반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마 10:17-20),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공회에 넘겨지게 된 것이다.

거짓 증인들의 참소를 들은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발언권을 준다. 스데반은 증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을 모독했다거나(6:11), 율법을 거스르거나(6:13), 모세가 전한 규례를 고치겠다(6:14)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 하신 일을 차근차근 짚고, 율법이 증거하며 규례가 지향하는 바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 밝히기 위해, 율법에 기록된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부터 꺼낸다.

스데반의 이야기에서 묘사한 요셉은 하나님께 “은총과 지혜”(10절)를 받은 사람이었다. 요셉은 예수님처럼 팔렸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고, 때가 되어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셨으며, 은총과 지혜를 주셨고, 이를 알아본 파라오가 요셉을 중용하였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한 생명의 떡(빵)이시듯, 요셉은 당시 중근동 지역의 많은 이들을 먹여 살렸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요셉은 자신을 판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합하였다. 그는 또한 야곱 일가를 이집트로 불러와 보호하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는 다리로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은총과 지혜를 받은 요셉은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높여 주셨지만, 성령과 은혜와 믿음과 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은 요셉과는 정반대의 순서를 겪는다. 그는 지금 공회에 끌려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게 요셉과 스데반 각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인도였다. 요셉은 어려서 환난을 당하고 자라서 많은 사람을 섬기며 나라의 백성을 늘리고 포용해야 했다. 스데반은 이때에 공회에서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예수께서 두루 다니며 이적을 행하며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듯, 민간에서 큰 기사와 표적, 즉 기적을 행하는 것(6:8)만이 스데반에게 향하신 하나님 뜻의 전부가 아니었다. 스데반은 사역을 잘하다가 억울하게 참소당하고 끌려와 재판을 받는 게 원통해서 하나님께 애끓는 마음으로 토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기록 대신 스데반이 공회에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했음을 보여준다.

요셉과 스데반처럼 성령과 지혜와 은혜가 충만하기는커녕 정반대로 살아왔지만, 그래서 내 실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금의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내게 뜻하신 바다. 그래서 힘들지만 감사하며, 이 기간에 내가 복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오늘 이단 상담 아카데미에서 복음 강의를 듣는데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해 계속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이 글을 적으면서도 요셉과 스데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란 내용을 적을 때 계속 눈물이 흘렀다. 주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나를 감동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첫 눈물을 터트렸던 구절대로 날마다 죽고 살기를 소망한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스데반은 앞서 언급한 예수님의 말씀처럼(마 10:17-20) 성령께서 하게 하시는 말씀을 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6:15) 묘사가 그가 성령 충만했다는 걸 보여준다. 내게도 그런 은혜가 있기를,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기를 구한다. 소망이 있다. 묵상을 마치는 지금 이어폰에서 들리는 찬양처럼, 내가 쓰러진 이곳에서 주는 나를 강하게 하신다. 나는 다시 일어난다. 주께서 나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기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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