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09.(화)
정리: 2024.07.09.(화)
사도행전 7:30-43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 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네 신을 벗으라
우선, 계속 이어지는 구약 성경 이야기는 스데반의 진술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할 뿐 아니라 ‘성경 충만’하기도 했다. 실은, 성령 충만의 증거 중 하나가 성경 충만과 성경의 지혜로운 해석 및 순종이다. 성령께서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지혜롭게 활용하신다.
스데반의 이야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신을 벗는다. 내게 당연히 있다고 여긴 모든 권리를 벗는다. 노예처럼 신을 벗어서 하나님께서 주님이심과 자신이 그분의 종임을 증명한다(왕상 18:36). 맨발로 걷는 길에 발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한다(신 8:4, 느 9:21). 자신이 이루려던 민족 해방의 꿈을 내려놓고,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간다.
훗날 그는 알게 된다. 민족보다 넓은 하나님 나라의 꿈도 넘어, 하나님과 맨발로 동행해온 이 걸음이 가장 귀한 순간들이었다고. 그래서 하나님 없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광야에서 멈추기를 바랐고(출 33장), 모세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벗었던 신을 다시 신곤 한다. 신을 신었으니, 어디든 발이 닿아도 웬만해선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이리저리 다닌다. 하지만 유리 조각을 밝지 않았다뿐이지, 덫에 발목이 찍히고, 맹수를 맞닥뜨리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해 머리와 몸이 상하고 만다. 신을 벗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조심조심 한 걸음씩 가야 하는데.
군대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는 구절을 깨달은 적이 있다. 어두운 밤, 작은 등잔 하나로 비출 수 있고 비춰야 하는 곳은 저 멀 리가 아니라 발치다. 발 바로 앞에 무엇이 있고 지형이 어떤지를 알아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빛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주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푸른 초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두 부분을 합하자면,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이 길을 맨발로 가자는 것이다. 내 주권을 포기하고, 주께서 가자 하시는 곳으로 가는 종으로서. 사방이 어둡지만, 목적지를 볼 수 없지만, 이렇게 가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걸 하나님께서 증명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내 발을 광야의 뱀과 전갈과 험한 길에서 지켜주시리라.
그러나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필요한 걸 공급하시는 길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금송아지나 몰록이나 레판 등 호흡 없는 우상들을 만들어 섬겼다. 사람이 만든 게 사람의 신이 될 수 없고, 사물이 살아 움직일 수 없다. 사람을 지으신 이, 살아계시고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또한 스데반은 모세가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듣고 깨닫는 자를 살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나는 다시 살아나서 살고 싶고, 허락된다면 나아가 살리고 싶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11-13)
하지만 지금은 내 인생의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노동의 의무가 부과된 아담처럼 고생하고 있다.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렘 12:13) 아담은 수고하여 벌어서 살아가기라도 했지만, 나는 소득을 소송 합의금으로 다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치기는 잘 다친다. 그저께는 또 칼 뒤 끝에 팔뚝을 찔렸다. 오늘은 집에서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트려 산산조각으로 깨트렸다. 매장에서는 익히기만 하면 되는 제육 볶음을 태웠다. 고추장을 짜는데 뚜껑이 빠지며 통 안의 고추장이 왈칵 쏟아졌다. 전부터 두 엄지 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는데, 최근 비가 와서 장화를 신었더니 통증이 심해서 발톱이 빠질 것 같다.
하지만 내 고생이 고생일 게 있나. 나는 내 과오에의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최근 부모님 등 지인이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이 자주 들린다. 그분들의 슬픔에 나를 비할 바 있겠나. 그리고 오늘은 독서 모임 참가자 중 한 사람의 암 수술이 있었다. 수술 부위가 너무 아프다고 한다. 당연히 나보다 더 아프다.
주님, 이제라도 내 신과 자기중심성을 벗고 주의 길을 가고자 하오니,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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