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11.(목)
정리: 2024.07.12.(금)
사도행전 8:26-40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없음)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나와 당신이 만난 우연 없는 이유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 교회는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진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교회로 복음이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게 하셨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들어갔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증거된다. 위기와 환난인 줄로만 알았는데, 최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 조각들이었다. 그는 통곡과 슬픔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신다(시 30:11).
빌립은 예수님 초림 당시 요셉에게나 목자들에게처럼 주의 사자가 지시한 대로 광야 길로 향한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에 군말 없이 순종하는 빌립. 나라면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거나 분별하기도 어렵거니와, 곧이곧대로 지시를 들었다 해도 “광야로요? 거기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데요? 있어봤자 도적떼뿐입니다. 환경도 너무 위험해요. 난 갈 수 없어요. 아니, 가기 싫어요”라고 예단하며 반응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른 빌립은 에티오피아의 내관을 마주친다. 얼마나 오래 기다린 하나님의 의도된 나비 효과와 빌드업인가? 무려 당시로부터 천 년 전부터 에티오피아 왕족들은 자신들을 스바 여왕과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사이의 자손들로 여겨왔다. 솔로몬 시대부터 에티오피아인들은 신앙을 이어왔는데, 마침 에티오피아 내관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갔다가 귀국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관은 헬라계 유대인들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더 멀리 떨어져서 유대교 예배를 ‘구경’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피부색마저 다른 외국인에, 유대법은 내시를 예배하는 백성에서 제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소리 내어 읽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빌립을 만난 것이다. 유대법은 그를 배제했으나, 하나님의 복음은 그를 포용할 뿐만 아니라 찾아오기까지 했다.
오늘 본문을 수록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3월호는 이렇게 적는다. “하나님 안에서 의미 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만남까지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은 주님이 우리에게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들 안에 거룩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원하십니다.” 천 년의 기다림 끝에 에티오피아 내관과 빌립이 만났고, 빌립을 통해 에티오피아인은 예수를 만났다. 유대인만 받던 세례를 그도 받아 그리스도의 교회 일원이 되었고, 귀국하여 고국에서 왕가와 백성들에게 빌립에게 배운 예수의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했다(행 1:8).
그 영향으로 이후 이천 년 동안 에티오피아 교회가 융성했고,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 64대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6‧25 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황실 근위부대에 강뉴 부대라는 이름을 지어 참전시켰다. 무패의 강뉴 부대는 한국 전쟁 휴전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남아 보육원을 지어 전쟁 고아를 돕는 등 전후 복구에 힘썼다. 이후 에티오피아는 공산화가 되기도 했고, 이슬람의 영향, 현재도 지속되는 내전으로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몰락하나 싶었지만, 여전히 정교회의 형태로 불길을 피우고 있다. 에티오피아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기를.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사람들을 제대로 섬겼나. 거룩한 복음의 씨앗을 뿌렸나.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나님께 내 뒤치다꺼리까지 해달라고 맡기는 나는 참으로 부덕한 존재다.
그러할지라도 주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내가 기도하는 분들에게 내가 전하지 못한 복음을 제대로 전하게 하시고,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나는 차라리 목에 연자맷돌이 매여 바다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딤전 2:4). 주께서 나와 내가 기도하는 분을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다면, 그 목적을 주의 열심으로 이루시옵소서.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내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않고 빌립처럼 주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변화시켜서 나를 다시 사용하소서. 베드로와 빌립에게 성령 충만하게 하신 주께서, 내게도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소서. 위기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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