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13.(토)
정리: 2024.07.14.(일)
사도행전 9:10-19a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과의 대화
하나님께서는 큰 그림을 그려 나비 효과와 도미노 효과를 세심하게 연결하시는데,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주의 뜻을 알리시고 주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도 한다. 본문에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더하여 사울이 기도하며 아나니아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았다고도 하신다. 그러니까 주께서는 기도하는 사울에게 아나니아의 방문을 보여주시고, 기도하는 아나니아에게는 사울에게 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하되 사람들을 조종하진 않는다. 아나니아는 첫 지시를 듣자 자신이 아는 상식 선에서 반박을 한다. 하나님께…… 반박을? 아나니아의 반대에 주님은 사울을 지정한 이유를 설명하신다. 아나니아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을 순서대로 훑어보자. 부름, 대답, 지시, 반박, 설명으로 설득. 마치 지인 간의 대화나 통화 흐름 같다. 엄격한 상관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명령도 아니고, 꼰대가 쏟아내는 자기 자랑과 장광설도 아니고, 나르시시스트가 반대 의견을 자존심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 무례하고 무엄하다며 화내는 것도 아니다. 이들보다 훨씬 높고 영광스러우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도하는 백성과 친밀히 ‘대화’하신다.
때로는 하나님의 설명이 불충분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실지라도, 침묵하실지라도, 주의 말씀을 따를 때 일어나는 일과 변화와 맺히는 열매를 경험하면, 과연 주께서 선하시고 옳았음을 알게 된다. 그분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환경을 주관하시며, 과거와 지금과 미래를 운영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주의 말씀과 침묵은, 주는 진실하고 신뢰할 만하다.
주께서 지시하신 대로 이동한 동방 박사들처럼, 사울을 방문한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고 부른다.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던 사울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자신이 핍박하던 무리에 ‘귀순’하여 함께 핍박받는 길에 들어섰다. 마치 모세가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던 것처럼(히 11:24). 물론 모세도 사울도 그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실책을 하나님께서 뒤집으셔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이끄신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보여주셨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아나니아의 안수에 사울은 다시 보게 되고, 에티오피아 내관처럼 세례를 받아 구원받은 주의 백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음식을 다시 먹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서의 영생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무너졌던 관계와 원수지간이 형제자매가 되는 놀라운 변화가 나와 내가 기도하는 분들 사이에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해야 할 과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다. 최근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길 소홀히 하고 나의 죄성에 이끌린 적이 늘어났다. 더 기도로 하나님과 깊어지고, 친밀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께서 하시는 말씀과 주시는 마음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벅차고 기쁜 일인데, 내 기쁨을 회복하기 원한다. 나보다 주께서 더 원하시니, 주께서 사울에게 하신 것처럼 나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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