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12.(금)
정리: 2024.07.13.(토)
사도행전 9:1-9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의 은혜
사울이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었다는 건, 스데반을 불법으로 처형하던 사람들의 집단 광기에 그도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죄 없이 불법으로 몰아 십자가형을 받게 한 대제사장 무리와 군중처럼 말이다. 법을 따져서가 아니라 질시와 미움으로 분노한 이들이 민란을 일으킬 지경까지 이르자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도 사형을, 그것도 십자가형이라는 극형을 언도했다. 스데반의 경우에는 군중이 투석형의 집행자를 자처하며 직접 돌을 집어 던져 사람을 죽이는 데 가담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는 걸 마땅하다고 여겼고, 스데반과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리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체포권을 받아 가지고 이스라엘 땅도 아닌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향한다.
다시 말해,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보며 죄책감이나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가 스데반의 순교를 보고 반성하고 감복하다가 다마스커스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고 회심했다는 건 성경의 진술에 반대되는 주장이다.
사울이 핍박자에서 예수의 사람이 되는 과정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에 일어났다. 사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빛 속에 잠기며 주의 음성을 듣는다. 성경의 모든 기록에서 그렇듯, 그리고 인류사에서 하나님을 처음 경험한 모두가 그랬듯, 사울도 땅에 엎드러져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혼자만의 망상이나 환청이 아닌 게, 사울과 동행하던 일행들도 같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던 세 명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사울 일행도 동시에 여러 명이 같은 음성을 듣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것이다. 자신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보인 빛과 들리는 목소리.
사울을 콕 집어 대화한 음성과 빛에 사울은 눈이 멀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다마스커스엔 도착했으나 그가 원하고 뜻한 바를 행할 수도 없었다. 죽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서, 그는 과거의 자신이 죽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난날의 삶과 가치관에서 완전히 돌아서고, 스데반의 죽음이 가진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어 크게 애곡했을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오히려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맞았고, 자신이 열심히 하던 일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이었다니. 그래도 자신을 막아 세우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는 크게 감복하며 남은 생애를 그가 없애려던 복음을 전 세계로 전하는 데 바치기를 뜻하고 원하게 된다.
5월에 고소장을 받고 하나님께 엎드려 감사한 것 중 하나가, 막 나가던 나를 멈춰주셨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 하나님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겼던 방법이, 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거라는 불편한 진실을 더 이상 외면 못하고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온전히 주의 사랑에 매여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여전히 내가 죄인인 걸 본다. 나는 사울, 아니 바울이 탄식한 대로 여전히 죄 된 자신 때문에 곤고한 사람이고, 그래서 바울이 얻은 발견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필요한 사람이다. 바울은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기에 모두가 죄인이고, 하나님께서 의에 이르는 길로 열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울처럼 예수를 증오하는 우리 가정도, 내가 손해를 끼쳐 나를 미워하게 된 원고도, 내가 기도하는 분과 그 가정도, 사울이 만난,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꼭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 역시 주를 더 알아가고 사랑하기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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