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7.16.(화)
정리: 2024.07.17.(수)
사도행전 9:19b-31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주 이름 찬양
실체이시며 실재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삶이 변한다. 이는 이후 2,000년 인류사에서 숱한 증인들이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 그중 바울의 변화는 극적이며 두드러진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온 사람이,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할지라도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경험한 모두는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장면이다. 그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러고 나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붙들고 계심에 감사하고 싶었다. 월요일 전까지는.
감사할 범사(凡事)들은 이랬다. 지난주 수요일에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묵상하며,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요한복음 8장 1-11절을 비교하며 묵상했었다. 며칠 뒤인 토요일 이단 상담 아카데미에서 원장님이 상처의 치유를 주제로 요한복음 8장 1-11절을 강의하셨다. 하나님께서 같은 본문으로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두 엄지발톱 밑에는 피멍이 들어있는데, 오른쪽 엄지를 몇 번 밟히고 부딪쳐 통증이 심했다. 하는 수 없이 금요일에 병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몰랐던 질환을 발견해서 약 처방을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원래 내 발톱은 내향성이라 특히 엄지발톱을 깎기 어려웠는데,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발톱이 부어서 발톱 깎기가 편했다.
그저께 일요일 아침에 2009년 11월 11일 군대에서 썼던 글을 컴퓨터로 옮겨 적었다. <은혜로운 자는 감사하는 자다>라는 제목을 붙인 글에는 욥기 1장 21절(“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과 빌립보서 4장 12절(“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을 인용했었다. 최근 묵상에서도 자주 인용한 구절들이다. 그런데 그날 예배 때 찬양으로 욥기 1장 21절을 기반으로 지은 <주 이름 찬양>이 나왔다. 가사를 마음에 짚으며 부르니 빌립보서 4장 12절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걸 알았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라 여겨져 감사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출근하여 밥 상태를 입으로 확인하지 않고 손을 댔을 때 따뜻하니까 괜찮겠지 싶어 판매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5개를 주문한 단체 손님이 밥이 설익었다며 사장님께 전화했고, 나는 5개를 새로 만들어 교환해야 했다. 매장에 방문한 사장님이 잔반통을 보라고 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잔반이 쌓여있었다. 매장에서 식사한 손님들이 말은 안 해도 맛없으니까 먹다가 버린 것이다(정리일인 오늘도 한 손님이 월요일 밥이 설익었다며 오늘 밥은 괜찮냐고 물어봤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오늘은 잔반이 거의 없었다). 매장에 손해를 끼쳤다.
사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양배추가 다 떨어져 갈 때쯤 사장님께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다 떨어지고 나서야, 그것도 대기하는 손님들이 여럿인 상황에서 연락을 한 것이다. 손님들은 기다리다가 대체 재료를 넣은 식사를 받거나 했다.
게다가 QT 책을 집에 두고 왔다. 이게 월요일 오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사울은 복음으로 변화 받고,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서도 복음의 확장과 교회의 성장을 본다. 나는 내 잘못으로 소송당하고, 꾸지람 듣고, 몸이 상해간다. 남 말에 팔랑귀는 나는 원고 변호사가 하라는 대로 도장을 찍었는데, 그 때문에 어머니가 불안해하며 잠도 못 자고 산다. 그래서 오늘 수습할 전화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마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염치없고, 무능하고, 어리석다. 사울, 그러니까 바울은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 11:1)고 했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안 된다. 반면교사로도 삼지 말고, 그냥 쳐다보지도 말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나는 이렇게 무너져 있어도 다른 성실한 증인들이 많이 있고,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탁월하고 신실하시니, 성령의 증거로 내가 기도하는 분들이 하나님을 알아 사울처럼 변화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잘해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잘못했으니,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성경과 성령으로 당신을 알려주시고 나타내주시기를.
글을 마치고 원고 변호사와 통화를 했다. 나는 요셉이나 다니엘이 아니지만, 그리고 변호사도 간수장이나 환관장이 아니지만, 내가 제시한 제안을 ‘쿨’할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텐데, 그리하셔서 감사하다. 무엇이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제 파라오 또는 느부갓네살(?)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볼 일이 남았다. 내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다시 마음이 풀어져 내 우상을 다시 세우는 나를 보았다. 성령께서 나에게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려주시고 나타내소서.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 ♡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10:17-33 | 하나님께서 뜻을 알려주시는 방법들 (0) | 2024.07.20 |
---|---|
사도행전 10:1-16 | 하나님께 닿는 기도 (0) | 2024.07.19 |
사도행전 9:10-19a | 하나님과의 대화 (0) | 2024.07.14 |
사도행전 9:1-9 |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의 은혜 (0) | 2024.07.14 |
사도행전 8:26-40 | 나와 당신이 만난 우연 없는 이유 (0) | 2024.07.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