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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12-23 | 영적 침체에서 부흥으로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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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5.03.(금)
정리: 2024.05.03.(금)


사무엘하 6:12-23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영적 침체에서 부흥으로

웃사의 장례를 치르고 석 달의 시간이 지났다. 다윗은 한번 나가면 쭉쭉 나가는 반면 한번 움츠러들면 스스로 자신의 동굴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적‧정서적으로 침체된 동안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오는 행사를 크게 준비했는데, 자신이 율법을 간과하여 사고를 냈으니 궤 입성식의 총책임자로서 죽은 웃사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에 시달리고, 사고를 본 백성들이 받을 충격과 수근거림이 두려웠을 것이다. 왕으로서의 위신 추락과 불명예를 받는 건 그렇다 쳐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떠나면 어떡하지?

정작 하나님을 오해하고 두려워한 건 다윗이었다. 내가 다시 하나님과 백성 앞에 나설 수 있을까? 그렇게 석 달.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언제 침체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석 달은 무한만큼 긴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궤가 놓인 오벧에돔 집의 소식이 들려온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12절) 그 소식에 다윗은 곧장 회복하여 일어난다. 눈물은 기쁨의 춤이 되고, 절망은 환희로 바뀌었다. 아, 하나님은 원래 이런 분이시지. 다윗은 웃사가 죽은 사건 이전에 자신과 동행하시며 보호하시고 돌보아오신 하나님을 기억해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숨었던 다윗은 다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란 걸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며 춤까지 추었다. 나를 회복하신 하나님, 우리 민족과 나라에 복 주실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열방에 복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 오늘날 저에게도, 우리에게도, 한국 교회에도, 온 세계에서도 부흥을 주옵소서.

그러나 미갈은 다윗이 헐거운 옷을 입고 뛰놀다 허벅지가 백성 앞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공주로 자란 미갈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공주답게’ 점잖게 조언했으면 됐을 텐데, 미갈은 ‘(다른 의미로) 공주답게’ 상류층의 화술을 사용해서 고상한 척 ‘돌려까기’를 했다.

한창 회복과 되찾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미친 거 아냐? 왜 저래?’라고 민망하게 핀잔을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이 임하여 부흥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지켜본 일부 사람들은 술 취한 것 같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120명은 누구보다 또렷하고 맑은 정신이었고, 양동근의 노래 <나는 나뻐>의 가사처럼 “누구보다 객관적, 이성적”이었으며, 지혜와 명민함으로 충만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함께 기뻐해야 할 미갈이 왕의 체통 운운하며 사람들 앞에서 다윗을 비꼬아 모욕한 건 곧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기도 했다. 다윗의 희열은 미갈이 초를 치고 찬물을 끼얹었다고 맛이 변하거나 식지 않았다. 다만 이날부터 다윗은 미갈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오늘 한 독서 모임에서 오스 기니스의 『르네상스』를 시작했고, 최근 에이든 토저의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내게 르네상스, 즉 소생과 부흥이 다시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선 청년부 예배에서부터 30대 중반의 큰 형(?)으로서 체통을 지키려 하기보다, 앞자리에서 내가 먼저 하나님을 마음 다해 찬양하고 예배하려 한다. 청년들이 30대가 되면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 뒷자리부터 앉는다. 그러니 나부터 예배의 방관자처럼 있지 않고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경배하자. 누가 뭐랄 것이 있을까. 사람의 시선을 넘어 하나님을 얻는 게 더 큰 가치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내게 부흥 주소서. 나로부터 시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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