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5.02.(목)
정리: 2024.05.02.(목)
시편 79:1-13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수치를 넘어 복음으로
성경 기록 시대, 특히 다윗 왕조 이스라엘-유다 시기에 예루살렘의 파괴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로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타락상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멸망을 경고하셨지만, 그래도 끝까지 완악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면, 최후의 최후까지 참으신 하나님께서 다른 도시와 지역을 넘어 수도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침략을 허용한 이방 민족은 예루살렘 왕궁뿐 아니라 성전까지 약탈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에게 모독받는 것마저 감내하실 정도로 당신의 백성을 깨트려서 깨우치겠다는 의지였다. 즉 예루살렘은 자기 죄로 망하는 것이다.
주변 모두가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으며, 남을 밟고 올라서는 성공에 매진하고, 이기적이며, 세속에 취해 있고,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저래도 돼?’라는 의아함과 경악이 나올 방종을 저지른다면 어떨까. 그러다 의인의 이유 없는 고난과는 무관한, 너무도 부끄러운 추락을 당하거나 망한다면? 주위에서 ‘하나님께 벌 받았다’고 하거나 ‘하나님 믿는다더니 거 봐라’고 조롱하지 않겠는가?
본문의 시인은 참담한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그는 민족의 죄악으로 나라가 망하고 외국의 조소거리가 되자, 이를 슬퍼하고 침잠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아담과 하와처럼 숨지 않는다. 그는 이 비참한 현실을 우리를 징계하신 하나님께 아뢴다. 이 결과를 몰고 온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고, 진노를 거둬 비방자들에게 돌려달라고 구한다. 늦었지만 이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상황에 마음이 끓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한 게 자신이란 걸 애통하면서.
에스겔 37장에서는 망해버린 이스라엘-유다의 회복을,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이 온전한 인간들로 되살아나 강한 군대가 되는 장면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성전에서 주의 백성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말씀하신다. 본문의 시인도 같은 내용으로 기도를 마무리한다. 이 비전의 최종적 성취는 요한계시록의 비전으로 이어지지만, 우리에게도 최종 회복뿐 아니라 오늘의 회복을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망하게 하시고, 내 수치와 부끄러움이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 내 마음은 지극히 가난하고 겸손해진다. 이 비통한 심정을 어디에 쏟아야 할까. 결론은 다시 하나님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공론화되면 사회에서 매장될 만한 부끄러움이 나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감싸주고 계심을 안다. 내가 이제라도 온전히 주의 법도대로, 정도를 가야 한다. 혹 내가 정말로 망할지라도, 여전히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물론 부디 수치스러운 패망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고, 도리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께서 행하신 일과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시 118:17, 시 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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