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3.04.(월)
정리: 2024.03.04.(월)
사사기 4:11-24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무화과 나뭇잎이 말라도 …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본문의 후반부에 주목해보면, 시스라와 전차 부대가 꺾인 가나안 왕 야빈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걸 본다. 믿고 있던 최신 무기로 무장한 최정예 부대가 사라지니, 야빈은 압제자였음에도 해방군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군대의 강함을 의지하다 망했지만, 드보라, 바락, 이스라엘군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편 20:7)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지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지 않을 모습이 내게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용감히 행하지도 못한다(시 60:12, 108:13). 하나님의 최선을 믿는다지만 늘 주어진 길에서 이탈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한다(요일 2:16). 하나님을 경외한다지만 다른 것을 돈이 없음을 두려워한다(마 6:24, 눅 16:13).
깨기 전에 이런 꿈을 꾸었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이 지역에 축제가 있다고 하여 놀러 나갔다. 이 조합으로 놀러 나간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이례적인 상황인데,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교회 청년부 부장 권사님과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고 지나치니 아버지가 교회 욕을 했다. 지나치자마자 했으니 충분히 들릴 거리였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권사님과 마주쳤는데, 아까 인사를 했으니, 그리고 아버지의 욕을 뒤로 들었으니 무서워서 나에게만 작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또 예의가 없다느니 하며 욕을 했다. 나도 참기 어려워서 설명하고 반박했는데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생이 화를 내며 먼저 집에 가겠다고 버스를 타러 갔다. 아버지는 차가 고장 나 서비스 센터 직원을 불렀다. 도착한 직원은 중재자처럼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일단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 아직 출발하지 않은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유일한 승객이자 먼저 타고 있던 동생이 내 편을 들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집 근처의 한 초등학교 주변이었다. 전화가 와서 교회의 발달장애가 있는 청년이 사고를 쳤다고 수습하러 오라고 했다. 허름한 저층 아파트 내에 학교 화장실 같은 공용 화장실이 있었는데, 대걸레 빨래통에 구정물이 담겨 있었다. 청년이 그 통에 구토를 했다는데, 그 토사물과 걸레 빤 물 속에 책이 한 권 빠져 있었다. 그 책은 오영필 감독님의 『서쪽 나라』(홍성사)였다. 탈북 과정을 취재하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빠져나오는 과정이 기록된 책이었다. 나는 맨손으로 그 책을 끄집어내 수도꼭지를 열어 물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닦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오 감독님은 귀중한 촬영 테이프를 지키려고 변기 속에 숨겼다가 꺼낸 적도 있었다.
현실의 부담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꿈은 짜증 나고 더러웠지만, 현실은 더 답답했다. 나는 현실의 두려움에 대처할 힘을 잃어버렸다. 직장도 돈도 재정이 들어올 길도 없고, 이를 개척할 의지가 희미하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다가 방향을 잃은 걸까.
방패와 창도 없이 나아갔지만 하나님을 의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 병거 구백 대와 잘 훈련된 가나안 군대를 이겼다. 눈에 보이는 야빈의 권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한 여인 야엘이 대장군 시스라를 처단했다. 내 미력함은 문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약할 그 때에 강함이신 그분(고후 12:10)께서 친히 일하신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오늘도, 오늘 더, 내일도, 내일 더.
이렇게 마음을 다잡기로 했지만 답답함을 깔끔히 해소하진 못했다. 그렇게 군대묵상록을 정리하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슬며시 느끼며 살짝 놀랐다. 어제 예배 2부 순서로 소모임을 하는데, 나는 군대 유격장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는 시편 119편 105절을 깨달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런데 오늘 군대묵상록에서 정리할 부분이 바로 그 유격장에서의 깨달음을 적는 차례였던 것이다.
또한 오늘 밤 독서 모임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지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나누었다. 귀가하여 마르바 던의 『안식』(IVP)을 읽는데, 오늘 읽어야 할 분량의 첫 페이지에 발달장애인을 모아 사역하는 라르쉬 공동체의 사례가 떡하니 나와 있었다. 라르쉬 공동체는 늘 축하했고, 축하할 일이 없으면 축하할 일을 만들어냈다. 축하는 기쁜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절망 속에서 기쁨을 피워내는 것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며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오늘을 허락하시고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을 축하한다. 우연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걸 일련의 작은 사건과 기적으로 알려주셨다. 나는 그분을 더 의지하고, 오늘을 승리로 마무리한다. 내 발에 등처럼, 내 길에 빛처럼 작지만 넘어지지 않게 비추는 주의 말씀이 하루를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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