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3.12.(화)
정리: 2024.03.12.(화)
사사기 6:11-16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기드온의 항변
하나님과 함께하던 과거의 영광은 희미한 기억으로 스쳐가고, 세상이 두려워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예수께서 죽으신 후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처럼, 그리고 미디안이 두려워 숨어서 타작하던 기드온처럼. 지금의 내 처지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치고 가난하며, 메마르고 핍절하다. 하나님과 함께 무엇이라도 해내고 견디며 이기고 맞서던 때는 개인의 역사책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승리하는 삶이란 것도 나에게는 어렵고 힘겨웠다. 내가 모든 것을 이기며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랄 수 있던 건, 내 두려움의 때에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피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겨낸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승리를 주셨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베드로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마 19:27, 막 10:28)지만, 예루살렘에서 그 주님을 잃었고 자신도 주님을 버렸다. 그에겐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활하신 예수를 몇 차례 만나고도 용납받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어 부끄러움에 말도 붙이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의 주변에 있었으나 예수는 그의 예수가 아니었다.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아니라 조상들의 하나님일 뿐이었다.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든 ‘모태 신앙’인 그는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그는 하나님께 실망했고, 삐쳐 있었고, 원망하고 있었다. 그와 민족이 놓인 처지가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옛날의 하나님은 지금 어디 가셨는가?
기드온의 원망 어린 반박의 반복에도, 현실이 이렇다며 안 될 거고 안 된다는 주장에도, 하나님은 기드온과 기드온을 향한 뜻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시는 말씀이 진실하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스스로와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보든 그를 큰 용사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고 하시면 큰 용사이고, 큰 용사가 된다.
다시 그물을 내린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받아들이신다. 나아가 배신자였던 그에게 당신의 양들을 부탁하신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사역을 맡기신 것이다.
나는 건강이 상해가고, 사랑을 잃고, 삶의 의지도 사그라들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묵상을 하며 2009년 군대 영내 창고 뒤편에서 홀로 땅을 차며 불렀던 <보혈>이라는 곡이 생각난다. <보혈>을 부르면서 내겐 예수님만 남았다고 고백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내게 당신만 남기시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에 맞추시고, 이 기반 위에 다시 모든 것을 더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큰 용사로 일으키셔서.
내가 나를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관점이 진실이고 진짜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말씀하시기를. 혹 마음에서 반대가 올라와도, 하나님의 포기 모르는 사랑이 우리의 원망과 불평을 이기기를.
'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6:25-32 | 두려움을 넘은 회심 vs. 분노의 저항 (0) | 2024.03.15 |
---|---|
사사기 6:17-24 | 신뢰, 그리고 경외와 평안 (0) | 2024.03.14 |
사사기 6:1-10 | 하나님의 용서, 나의 용서 (0) | 2024.03.12 |
시편 66:13-20 |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0) | 2024.03.10 |
사사기 5:24-31 | 야엘의 결단 (0) | 2024.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