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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25-32 | 두려움을 넘은 회심 vs. 분노의 저항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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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을 내놓아라 vs 바알이 신이면 그가 기드온과 싸울 거다

작성: 2024.03.14.(목)
정리: 2024.03.14.(목)


사사기 6:25-32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두려움을 넘은 회심 vs. 분노의 저항

요아스의 변심, 아니 회심이 궁금하다. 기드온과 열 용사가 행한 일을 알고 나서였을까. 그는 마을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당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 정도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믿음의 대상이 아무 힘도 못 쓰고 사람에게 훼손되고, 신상이 무너진 자리에 여호와의 제단이 세워진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바알과 아세라, 이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없앨 수 있는 건 신이 아니구나. 이따위 것보다 내 아들 목숨이 더 소중하고말고! 바알이 진짜 신이면 직접 나서겠지.

두려워하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1세기의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롬 8:38-39)이 우리를 죽일지라도 넉넉히 이긴다고 썼다. B.C. 6세기경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신바빌로니아제국 황제 느부갓네살의 위협에도 의연히 불 속에 던져졌다. 이들은 불 앞에서 황제에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말했다. 기드온이 태운 아세라 신상과는 달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옷이나 머리카락 하나 탄 흔적 없이 불 속에서 걸어나왔다. 아시리아와 이집트를 격파하고 고대 근동을 제패한 느부갓네살 황제는, 눈앞에서 하나님이 세 사람을 보호하시는 걸 보자 포로들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송했다.

반면 B.C. 9세기경 시돈에서 건너온 이스라엘 왕비 이세벨은 달리 반응했다. 이세벨은 자신의 세력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수백 명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의 대결에 패해 처형당한 소식을 듣자 이를 갈았다. 왕비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소식을 듣고도 더욱 화를 내며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공언한다(왕상 19:1-2). 오늘 본문에서 요아스를 찾아온 마을 사람들의 심정도 이세벨의 분노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두려워하거나 중요하게 여긴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앗아가실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복수심에 불탈 것인가. 과거에 나는 내 소유를 마음대로 처분한 엄마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지만, 이후 그보다 엄마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걸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떨까. 내 소중한 누군가는 이제 닿을 수 없는데,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 많이 쓰리고 아프다. 어찌하였건 이 일로 내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기를. 그리고 그 누군가도 요아스와 느부갓네살과 바울처럼 하나님을 맞이하는 회심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좋은 나라에서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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