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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사사기 7:16-25 | 하나님의 승리를 얻는 공동체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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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분열하는 아말렉과 미디안

작성: 2024.03.20.(수)
정리: 2024.03.20.(수)


사사기 7:16-25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승리를 얻는 공동체

미디안과 아말렉의 13만 5천 약탈 부대는 수가 많았지만 처음으로 저항군을 맞이해 긴장했을 터였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도적질만 해봤지 부대가 충돌하는 전쟁에는 익숙지 않았을 것이었다. 초병은 기드온이 자신들을 덮치는 꿈에 겁을 먹었다(삿 7:9-15). 결정적으로 이들은 노략하려고 이합집산한 도적떼일 뿐, 동맹 간의 의리라고는 그들이 약탈해온 밀 한 톨만큼도 없었다. 서로 계산이 안 맞거나, 이익을 침해받는다 여기면 등에 칼을 꽂을 집단이었다.

반면 기드온과 300 용사는 연합군과는 완전히 다른 부대였다. 이들에게는 병장기도 낙타도 없었지만 두려움도 없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지파에서 모였지만, 이들은 서로 신뢰하여 하나로 뭉쳐 있었다. 적군보다도 전투 경험은 더 없었지만, 이들은 죽기를 각오했다. 적군은 물자만 취하고 살아서 누릴 생각만 했지 죽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동맹을 곁에 두고 이스라엘 독립군이 진격해온다는 소문이 팽배한 어느 밤. 드디어 기드온 군의 야습 신호에 동방 연합군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밤이라 상대의 규모도 파악할 수 없었는데, 진영을 둘러싼 횃불들이 보이고 깨지는 소리와 함성이 들리자 수만의 적군에게 포위된 줄로 착각했다.

그들은 달아나는 와중에 동맹이 깨져 서로 싸웠다. 진작부터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던 듯도 하다. 이스라엘 약탈을 마무리하면 동맹을 몰아내고 탈취물을 독차지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틀어지자 동맹의 물자라도 빼앗아 가려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경계 책임을 빌미로 공격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기드온 군의 난입에 서로 나 몰래 이스라엘과 편 먹었냐며 따졌을 수도 있다(이 추측이 그나마 합당한 추측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그들은 적군 앞에서 힘을 합쳐 막아내도 모자랄 국면에 서로를 불신하여 내분으로 자멸하는 최악의 수를 둔다.

경과가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13만 5천 대 300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군세를 뒤집어 칼 한 번 안 휘두르고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셨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건실한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돌아본다. 수가 많다고 강한 것도 아니고 부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익을 목적으로 계약서상 서명만으론 불신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순수한 열망으로 자신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 서로의 등을 맡기는 믿음으로 모인 공동체가,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그린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 나의, 우리의 공동체, 가정, 모임, 교회는 어떠한가?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공동체이기를.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기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끼리 동방 연합군처럼 불신하며 다투지 않고, 기드온과 300 용사처럼 서로 믿고, 또 사랑하기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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