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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사사기 8:10-21 | 기드온의 길, 그리스도의 길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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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기드온의 칼을 막는 예수 그리스도, AI 가상 이미지

작성: 2024.03.24.(일)
정리: 2024.03.26.(화)


사사기 8:10-21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기드온의 길, 그리스도의 길

동방 군대는 대파당했지만 만 오천 명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패잔병인 이들은 전의를 상실한 지 오래고 고작 300명의 추격에도 두려워하여 달아났다. 결국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 기드온은 그들을 바로 처형하지 않고 숙곳과 브누엘로 끌고 가서 보였다. 그들의 주검만 실어온다면 이들이 세바와 살문나인지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드온은 맹세한 대로 숙곳과 브누엘을 징계한다. 그는 스스로 복수귀가 되기로 했다.

세바와 살문나를 심문하던 기드온은 그들이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원수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어린 아들 여델에게 칼을 맡긴다. 전에도 적었지만, 칼은 귀해서 지도자가 갖추는 권위 있는 무기였다. 기드온은 아들을 전장에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뒤를 잇게 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분노를 아들에게 동조시키려고 했고, 분노와 복수의 싸움을 대대로 이어가게 하려고 한 듯하다.

내 인생이 왜 이러지? 내가 왜 에브라임에게 굴욕을 당해야 했지? 내가 왜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해야 했지? 내가 왜 형제들을 잃어야 했지? 다 너희 미디안의 세바와 살문나 때문이다. 너희가 내 가족을 해치고 내 삶을 망가트렸으니, 내 가족 내 아들이 너희를 죽일 것이다.

기드온은 이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여겼겠지만, 실은 아버지로서 최악의 모습이었다. 좋은 아버지라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과 자신의 대에 있는 응어리를 대물림하지 않고 끊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기드온은 분노해 있었고, 복수의 정당성과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래서 미성년 아들에게 사람이 죽고 죽이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게 했고, 이제는 자신의 복수에 함께하도록 칼을 쥐여준 것이다. 아들과 그 자손에 자손이 미디안과 대대로 원수로 지내는 끔찍한 인생을 살지도 모르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의 나는 기드온의 마음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 발단은 어제부터였다. 10년 넘게 교회를 떠난 K와 만났었다. 그는 열성을 냈던 과거 모습과는 다르게, 애초에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 상태에서 교회의 부정적 측면들을 접하기도 하고, 교회 과몰입에서 빠져나와 살아보니 삶이 더 잘 풀렸다고 한다. 중간중간 거친 표현들과 무례하고 교만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마음이 좀 상했다. 물론 그보단 그의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지만.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어제 묵상한 것처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오랜만에 하나님이 싫어할 다른 기쁨을 찾아 나를 소진했다.

 그리고 오늘 예배 때 쉽사리 찬양할 수 없었다. 어제 K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흘러오며, 내 삶은 왜 이래야 하냐고 원망이 새어 나왔다. 나는 왜 필요한 것들이 없고, 쉽게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이 끊어져야 하는지(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소통의 부재는 나를 미친 듯이 답답하게 한다). 이 세 가지에는 내 책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끓어오르는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다. 그래서 예배 때 앞에서 인도하는 찬양을 제대로 부를 수 없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게서 하나님이 위대하시다고 인정하기를 싫어하니, 차라리 K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드니, 하나님을 위대하시다고 찬양할 수 있게 하소서.

예배를 마치고 앞에 설치된 화면에 신명기 8장 2절이 띄워졌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아, 내 광야는 시험이구나. 그렇지만 약한 나로서는 너무 가혹하다. 나는 항상 패배하고, 인생에 승리가 없다.

그리고 본당에 오후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성가대에서 “나를 정복하셔서 승리하소서”란 후렴의 곡을 불렀다. 아, 내 진정한 승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취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기시고 다스리시며 안으시는 거구나. 내 타락한 본성, 분노, 원망, 패배감을 하나님께서 정복하시고 승리하소서.

그리고 내일부터 고난주간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 한 주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지.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지. 그래서 기드온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예수 제자의 길(눅 9:23)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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