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4.02.(화)
정리: 2024.04.02.(화)
사사기 9:1-6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어글리 크리스천
기드온은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 줄 알았고, 뜻이 막히면 불같이 성질을 내며 어떻게든 뜻을 관철하고 반대자들을 제거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인생에서 실패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눈부신 성공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라 믿으며, 성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믿었겠지만, 이는 자신의 소견에만 옳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드온의 성공이 그를 넘어지게 하고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다.
기드온은 자신의 성공 왕조를 이스라엘에 대대로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공했다는 이방의 왕조들처럼 지역 유지들과 많은 정략 결혼을 맺고, 많은 아들을 낳아 그들로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바란 대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편하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기드온의 꿈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기드온이 죽자마자 그 집안을 홀대했다. ‘바알과 싸우다’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가진 기드온이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다. 왜 그랬을까?
추측건대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하나는 기드온의 아들들이 기드온의 위세를 믿고 사람들에게 ‘갑질’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방 호족 가문과 이스라엘을 건진 구국 영웅 기드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면 어려서부터 대접받으며 늘 윗사람으로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의 몸에 밴 권위 의식은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며 ‘자기 욕망에 좋은 대로’ 방종했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국가 고위직의 자녀나 재벌 2‧3세들의 안하무인 태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드온 집안을 마음속으로 미워하다가, 기드온이 죽자 곧바로 외면한 것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섬기는 본을 이스라엘에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금 에봇을 만들었고 이스라엘은 이를 음란하게 위하였다(삿 8:27). 기드온은 하나님을 승리와 성공을 주시는 분, 인생을 형통하게 하시는 분으로만 알았다. 금 에봇은 성공주의와 기복주의 신앙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기드온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복을 주는 이방 신 중의 하나처럼, 과거 조상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여호와라 부른 것처럼 여겼다. 나아가 이름뿐이라도 여호와 신앙을 강제했던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폭군의 신을 버리고 어차피 같은 색깔의 믿음이니 자연스럽게 바알을 다시 들여왔다.
기드온이 다진 초석은 종교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정치 권력의 측면에서도 산산히 부서졌다. 그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멜렉이 어머니의 일족을 규합하여 탈레반 같은 군사 조직을 만들었고, 배다른 형제 70명을 다 죽이고 홀로 왕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완벽한 성공을 후대까지 이어갈 기반을 다져놨다고 여겼겠지만, 기드온의 꿈은 그의 죽음과 동시에 박살나버렸다.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어제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올바른 행함 있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여 삶으로 그 말씀을 선보이고 증거했다. 마치 그가 본 그룹 천사가 머리와 몸이 함께 나아가고 방향을 꺾지 않는 것처럼. 에스겔은 주의 말씀을 증거하며 숱한 오해와 반대, 비난에 직면했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삶도 따르기 어렵고 불편하며 심지어 더러운 것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순종했다.
반면 기드온은 자신의 성공과 승리를 하나님의 성공과 승리로 여기며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지 못했다. 그처럼 승리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축감을 주거나, 하나님을 성공의 만능 열쇠로 오해하도록 헛바람을 넣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관점에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자신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오늘날 주변의 현실 인식과 자기 인식이 안 되는 ‘꼴불견’ 또는 ‘꼰대’ 기독교인을 떠올려 보라.
종합하자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니 자기 소견에 보이는 대로의 하나님을 금 에봇처럼, 금송아지처럼 따르며 이것이 하나님 믿는 삶이라고 선전하는 왜곡된 전도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혼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도 말과 삶이 따로 가는, 에스겔 13장의 ‘거짓 선지자’임을 알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스로가 거짓 선지자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은혜로 지혜를 베푸셨으니, 나로 기드온과 거짓 선지자의 길에서 떠나 에스겔과 그룹의 길로 가게 하시기를.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이 각자 따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를.
'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하 1:1-16 | 수상한 아말렉 청년 (0) | 2024.04.06 |
---|---|
사사기 9:7-15 | 하나님과 나를 아는 것 (1) | 2024.04.04 |
사사기 8:29-35 | 기드온과 그룹(케룹, 케루빔) (0) | 2024.04.01 |
사사기 8:22-28 |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vs. 성경에 기록된 대로 (0) | 2024.03.29 |
시편 68:1-6 | 선을 이루기까지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 지키기 (0) | 2024.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