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0.11.30.(월)
정리: 2020.11.30.(월)
시편 22:1-10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우리 조상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었으므로,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빗대어서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 "그가 주님께 그토록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그를 구하여 주시겠지. 그의 주님이 그토록 그를 사랑하신다니, 주님이 그를 건져 주시겠지"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모태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 맡긴 몸, 모태로부터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새번역)
나의 묵상: 어찌하여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시편을 인생에서 많이도 불러왔다. 예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외쳤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지만, 다시 이 시를, 이 기도를 할 일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만 찬양하며 평생을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땅에서 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때에, 하나님을 찬양할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로 달려가는 기이한 일을 만드는 게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곤핍치 않게 채우시고,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사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지라도, 빻아서 파묻었던 우상의 무덤에 다시 내려가는 게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상기하자. 식사 때마다 그리스도를 기억하자.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자. 고난은 이렇게라도 자처하여 지는 것이다. 십자가 너머의 생명으로 살기 위해
내가 누구인가.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 맡긴 몸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나를 모태에서 이끌어 내신 분, 유아부터 당신을 의지하게 하신 분이다. 모태로부터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다. 나와 그분은 뗄 수 없고 끊을 수 없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어리석은 길로 가지 말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 그리고 사망이나 생명이나 칼이나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이 시를 외치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높이며,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성령께서 이를 내게 오늘도 가르치신다. 오늘도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나를 다시 맡기며 누인다.
하나님 홀로 찬양 받으소서. 아멘. 아멘.
'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6:13-20 | 임마누엘 (0) | 2023.07.15 |
---|---|
히브리서 6:9-12 | 하나님이 아시는 위로 (1) | 2023.07.14 |
히브리서 5:11-6:8 | 인도에 의지하는 겸손 (0) | 2023.07.12 |
히브리서 5:1-10 | 기도의 이유 (1) | 2023.07.10 |
히브리서 4:14-16 | 나의 예수만 남아서 (1) | 2023.07.09 |
댓글